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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지으란 건지 말란 건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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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400여 가구의 서울 서초동 삼호가든 3차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4개월째 멈춰 서 있다. 당초 3월께 조합총회를 열고 사업계획을 확정한 뒤 구청에 사업승인을 신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시행된 재건축 규제 완화의 세부 내용이 불확실해 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바뀐 법대로라면 임대주택을 짓지 않아도 돼 가구당 1억6000만원 정도의 사업비를 줄일 수 있다. 조합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임대주택을 짓지 않도록 사업계획을 바꿀 수 있는지 질의했으나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다. 조합 관계자는 “검토 중이라는 회신만 받았다”며 “임대주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전했다.

 낡은 주택을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 사업이 임대주택 규제 완화 혼란에 빠졌다. 법에만 애매하게 정해져 있고 세부기준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국회는 올 1월 1일 재건축 정비계획의 용적률을 자치단체 조례에 상관 없이 법적 상한까지 높일 수 있는 조항(4조의 4)을 신설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재건축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이에 따르면 임대주택을 짓지 않고 법에서 정한 한도까지 최대한 재건축 규모를 늘릴 수 있다. 임대주택으로 계획된 물량을 일반분양할 수 있어 그만큼 재건축 사업성이 좋아진다.

 분양가가 비싼 지역일수록 혜택이 크다. 분양가에서 임대주택으로 지어 자치단체에 넘길 경우 받는 표준건축비(3.3㎡당 500만원가량)를 뺀 금액이 조합 수입으로 더 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분양된 서울 반포동 신반포1차 재건축 단지(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임대주택인 전용 59㎡형 78가구를 일반분양한다면 조합원당 9000만원가량의 추가분담금이 감소한다.

 그런데 법적 상한 용적률로 재건축하면서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 기존 법 조항(30조의 3)도 살아 있다. 이 조항은 조례에 따라 정해진 정비계획 용적률에서 법적 상한까지 완화된 용적률의 절반을 전용 60㎡ 이하의 소형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재건축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2009년 4월 도입됐다. 이에 따라 똑같이 법적 상한 용적률로 재건축하면서 임대주택을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어도 되는 것이다.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임대주택 건립 의무가 없는 신설 조항으로 사업하고 싶지만 관련 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신설 조항과 기존 조항의 관계 등 세부 기준이 없다. 신설 조항은 자치단체가 “(법적) 상한까지 정할 수 있다”는 조항만 담고 있다. 국토부는 “정비계획은 자치단체 업무이기 때문에 자치단체에 문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정된 법률의 적용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며 “신설 조항의 적용은 공공기여 정도 등을 따져 사안별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법은 시행일인 1월 14일 이후 사업승인을 처음으로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때문에 사업승인 신청 이전 단계의 사업장들이 임대주택 건립 여부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강남권에서 조합 설립 단계인 12곳 중 1월 14일 이후 사업승인을 신청한 단지는 한 곳에 불과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사업승인 이전 단계의 재건축 단지는 7만3000여 가구다. 이 중 5만2000여 가구가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이다. 개포동 주공4단지 장덕환 재건축 조합장은 “당연히 신설 조항으로 사업하는 게 나은데 아직 서울시의 지침이 없어 답답하다”며 “사업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다 서울시는 전세난 속에서 신설 조항대로 용적률을 올려주면 임대주택이 줄어드는 부담이 있다. 2007년 이후 올 1월까지 서울에 공급된 재건축 임대주택은 1787가구로 같은 기간 나온 전체 장기전세주택(시프트·2만5893가구)의 7%를 차지한다. 사업승인 이전 재건축 사업장들에 계획된 임대주택은 6000여 가구다. 이들 사업장이 신설 조항대로 사업을 바꾸면 6000여 가구의 임대주택 공급이 끊기게 되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 관계자들은 “국토부는 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자치단체는 임대주택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J&K 백준 사장은 “모호한 규제완화가 되레 재건축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서로 상충되는 신설 조항과 기존 조항을 정리하는 등 관련 법령을 빨리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장원 기자

◆재건축 임대주택=2005년 재건축으로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를 임대주택으로 짓는 환수제가 도입되면서 재건축 단지에 임대주택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2009년 환수제가 폐지되고 용적률이 법적 상한까지 허용되는 대신 정비계획과 법적 상한 용적률 차이의 절반을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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