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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북한 선군정치와 일본 우경화의 적대적 공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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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이 사석에서 가끔 꺼내는 말이 “극지(極地)는 통한다”이다. “북극과 남극은 서로 통한다”인데 얘기인즉슨 “극우와 극좌는 양 극단의 대칭점에 있지만 서로 상대가 있으니 먹고 산다”는 적대적 공생론이다. 상극임에도 상대의 존재를 이유로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찾는 역설이 되겠다. 시야를 넓혀 북한의 선군정치와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에 이를 적용해 보자.

 세월호 참사로 나라가 혼이 나간 사이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집단적자위권을 공식화했다. 동맹국(미국, 주한미군)이 공격받으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평화헌법 해석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 한반도 돌발 사태 때 미군 군함을 타고 한반도에서 대피하다 공격받는 일본 국민의 그림까지 배치하며 북한 위협을 명분으로 삼았다. 북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다음날 북한 노동신문은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는 해외침략의 첫 걸음”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뭔가 공식 발표할 땐 복선이 깔려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후 “일본의 재침 야망에 대응한 공화국의 자위권”으로 포장하려는 포석일 수도 있다.

 과거에도 북한과 일본은 비슷했다. 일본 사회에 북한 위협을 각인시킨 출발점은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다. 그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발사 이틀 후 북한 아태평화위원회는 격앙된 일본을 향해 “일본 등 다수 국가가 미사일을 보유·배치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다음해 7월 북한 대포동을 이유로 방위백서에서 “유사시 자위대가 원활히 활동하도록 유사법제(비상시 자위대 대응 내규) 정비가 필요하다”며 집단적자위권의 단초를 만들었다. 북한과 일본이 구체적으로 각을 세운 90년대는 두 나라 모두에 음울했던 시기였다. 파탄에 직면한 경제 시스템으로 북한은 국가적 기아 사태인 ‘고난의 행군’을 거쳤고, 89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자신감 넘쳤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내부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시선은 외부로 향해졌다.

 문제는 우리다. 무엇보다도 전방에선 북한 정권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할 핵 전력이 쌓이고 있다. 우리에겐 1차적·직접적 위협이다. 후방인 일본에선 지난 4월 비록 소수였지만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흔드는 시위가 등장했다. 그러니 북한의 무력 증강부터 중단시켜 한반도를 안정시켜야 하고, 이어 일본엔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내놓게 해 우경화의 파고를 잦아들게 해야 한다. 북한의 선군정치와 일본의 극우화가 두 극지라면 설득과 햇볕으로 녹여버리건 국제사회를 통한 압박으로 소멸시키건 뭔가 진행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속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나라 바깥의 정세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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