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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16) 스톡홀롬에 있는 쿵스홀멘 고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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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스홀멘 학교

개천에서 용(龍) 나는 사회. 복지천국 스웨덴 교육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집이 가난해서’‘부모를 잘못 만나서’라는 핑계를 댈 수 없다. 유아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인 것은 물론, 정부가 학업보조금도 준다. 쉽게 말해 강남 사는 의사 자녀와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한 외할머니와 사는 아이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거다. 여기엔 자녀가 부모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으므로 양육과 교육은 사회가 책임진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한 사람의 아이’가 아니라 ‘모두의 아이’라는 개념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쿵스홀멘고등학교에서 12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이하영씨를 통해 스웨덴 교육을 들여다봤다.

박사 과정까지 학비·교통비 무료
외국인도 고교까지는 무상 혜택
스웨덴어 모르면 통역 교사까지 지원

쿵스홀멘 고등학교 카니발 모습.

12학년(한국 고3) 재학 중인 이하영씨

학교 도서관 소설 코너.

스웨덴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7년째다. 2008년 아빠가 스웨덴으로 발령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왔다 부모님이 2년 전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나만 남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한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외국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캠브리지대와 애딘버러대 등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후 쿵스홀멘고등학교에서 12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이번 학기는 ‘국제입양’에 대한 논문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웨덴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고교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 대학 가서 공부할 실력이 있는 지를 판단하는 거다. 전에는 공연이나 미술작품 등의 졸업 과제만 내면 됐지만 2011년 교육법 개정으로 우리 학년이 졸업논문 쓰는 첫 학년이 됐다.

스웨덴 교육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학생 자율성을 존중하고,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다. 이중 스웨덴을 교육 선진국으로 만든 건 공평한 기회, 즉 교육 복지 영향이 크다. 학교 다니면서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노력과 열정이 있으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였다. 스웨덴에서는 돈이 없어도, 인맥이 부족해도, 뛰어나게 머리가 좋지 않아도 원하는 걸 이루려는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완벽한 무상교육 … 보조금까지 지원

매점에서는 학생들이 요기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과 관련해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유아학교부터 대학원 박사학위까지 등록금과 교통비가 무료다. 또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원금으로 매달 1050크로나(한화 약 17만원)를 받는다. 만 16세까지는 부모에게 아동지원금으로, 만 17세부터는 학생에게 직접 학업보조금 명목으로 지급한다. 대학에 들어가면 지원 폭은 더 커진다. 만 19세 이후 대학생에게는 매달 학자보조금으로 2820크로나(한화 약 45만원)를 주고, 필요한 학생에게는 매달 6184크로나(약 98만원)를 빌려준다. 이는 장기 저리 융자금으로 상환 기간은 최대 25년, 금리는 1.2%(기준 금리 0.75%)다. 누구나 원하면 매달 총 9004크로나(대략 142만원)를 지원받을 수 있는 거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전에는 외국인도 이런 혜택을 똑같이 누렸지만 2011년부터는 대학 등록금은 내야 한다. 내가 영국 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다.

학교의 비공식 마스코트 퍼그 동상.

재정 지원뿐만이 아니다. 교육 제도 곳곳에는 약자를 위한 배려가 녹아 있다. 단 한 명의 외국인 학생을 위해 통역 교사를 지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를 예로 들면,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한국어와 스웨덴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교사는 없었지만 영어가 가능했기에 미국인 교사를 배정받았다. 통역 교사는 일주일에 1~2회 내가 다니는 학교로 방문해 스웨덴어를 가르쳤다. 스웨덴어를 배우기 위해 6개월간 다녔던 소피에룬드학교에서는 물론, 애즈베리학교로 옮긴 후에도 계속됐다. 스웨덴어에 익숙해져,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때까지 1년 정도 스웨덴어 과외를 받은 거다. 부모가 학교에 상담하러 갈 때도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인 통역관을 섭외한다. 통역 비용은 학교 측이 부담한다.

공부 너무 열심히 하면 걱정

연극제 때 무대에 오른 학생들.

학생을 존중하는 것도 스웨덴 교육의 장점이다. 스웨덴에서는 교사와 학생은 물론 부모와 자녀 관계도 수평적이다. 학생도 어른들과 똑같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학생다운 옷차림’이나 ‘학생다운 태도’ 등을 강조하지 않는다. 소피에룬드학교에 처음 등교했을 때 여학생들이 미니스커트나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모두 화장을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복장 규제뿐 아니라 태도에 대한 간섭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는 제재하지만 그 외에는 학생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한다. 한국에서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압수하는 게 당연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할 거다. 학교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부모가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라”고 압박하는 일은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묻는 건 요즘 관심사나 교우관계, 최근 읽고 있는 책 등이다. 스웨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거다.

한 학생이 매점 앞에 세워놓은 콜라주 작품에는 아동 인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스웨덴은 오히려 공부 열심히 하는 걸 걱정한다. 애즈베리학교를 다닐 때 체력이 약해져 코피를 자주 흘렸다. 교사들은 내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허약해진 것으로 결론내렸다. 8학년 때 프랑스어 수업을 하나 더 신청하려고 하자 교사들이 건강에 괜찮을지를 두고 회의를 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내 의지를 존중해 수업은 신청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공부를 너무 많이 하게 하지 말라”거나 “좀 뛰어 놀게 해라” “다른 활동을 많이 시켜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교사들, 진학률보다 학생 꿈에 관심
대학 평준화로 학교 간판보다 전공 중요시
PISA 성적 저조하자 “한국 닮자” 여론도

고교는 꿈을 찾아가는 과정

학생에게 공부를 하지 말라니, 쉽게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이게 가능한 건 스웨덴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중·고교는 대입을 위한 시기가 아니라 자기 적성을 발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이다. 또 한국처럼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졸업 후 취직해야 한다’는 식의 정해진 틀이 없다. 그래서 대학 진학률 관련 통계도 없다. 쿵스홀멘고등학교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모여 있는데도,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는 고3 학생에게 “무슨 대학에 갈 거냐”고 묻지만, 스웨덴에서는 “뭘 할 거냐”고 질문한다. 졸업 후 바로 취직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1년 정도 세계여행을 하거나 콩고 등에서 해외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대학에 진학하는 건 고교 졸업생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에 떨어졌다고 낙오자 취급을 받는 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수한 대학에 갈 수 있음에도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친구는 고교 1학년 때 대입 자격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고교 다니는 동안 모든 과목에서 패스(pass)만 하면 스톡홀름에서 가장 좋은 의대에 갈 수 있었다. 또 영국 캠브리지대 수학과 2차 전형까지 합격했는데, 안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으니 더 찾아보겠다”는 거다. 은행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데, 졸업 후 일을 더 하다 1년 후에 대학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간판보다 실력 보는 사회

진로 프로그램도 잘 돼 있다. 보통 9학년(중3) 때 미래를 설계하고, 큰 그림을 그린다. 고교별로 운영하는 전공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유리한 학교에 가는 게 중요하다. 고교에는 어린이와 여가, 건축, 요리, 손 작업, 기술 등 20여 개의 전공이 있다. 셰프가 되고 싶으면 요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고등학교에, 관광 가이드가 꿈이라면 관광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면 된다. 입학 후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실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이 뭔지 찾아 나갈 수 있다.

그렇다보니 명문대라는 개념도 크게 없다. 대부분 대학은 평준화 됐고, 학교별 커트라인보다 전공별 커트라인이 더 중요하다. 보통 의대·치의대·법대·사회복지대 등이 경쟁률이 높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도 대학 간판은 큰 의미가 없다.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학교 수업은 비판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웨덴에서는 객관식 문제를 풀 일이 거의 없다. 수업은 거의 토론이고, 시험은 대부분 글쓰기다. 외워서 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지식을 드러내야 한다. 수학마저도 서술형으로 풀어야 한다. ‘1+1’의 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1+1이 2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 본 시험은 종교학이었는데, 서술형 8문제와 에세이 쓰기 1문제가 나왔다. 에세이 주제는 ‘불교가 일신교로도 보일 수 있고, 다신교로도 보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라’ ‘유대교의 전파를 논하라’ ‘이슬람 내의 여성의 지위를 논하라’ 중 하나를 고르는 거였다. 보통 A4 용지 2장 분량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달달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요즘 스웨덴 내에서 교육제도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핀란드에 비해 낮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점수 때문이다. 2012년 수학 과목 기준으로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위, 스웨덴은 28위였다. PISA점수가 높은 한국의 교육을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있을 정도다. 사실 PISA 점수만으로 스웨덴 교육을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고,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수치화할 수 없어서다. 2013년 OECD에서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스웨덴이 호주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이런 교육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하영(21·가운데)씨와 학교 친구들.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정리=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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