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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억불 고지는 어렵지 않다|정영모 (한은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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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백억불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수출은 국력」이라는 기치 아래 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보람이 있어 이 고지에 올라선 것이다.
1962년의 5천만불에서 백억불로 15년간에 수출이 2백 배로 늘어났다는 기적적 현실을 어떻게 풀이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 요인을 두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사람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싶다.
1962년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수출 신장 잠재력을 이미 갖고 있었으나 누구도 그 잠재력을 발동시킬 계기를 마련해주지 못 함으로써 잠재력은 사장되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해방 후의 지나칠 정도의 교육 투자는 점화만 하면 발동할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5·16 혁명은 이 노동력의 발진의 신호를 내렸으며 사장되고 있던 잠재력이 수출로 향하여 폭발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고 하겠다.
즉 양질의 노동력의 풍부한 존재는 노동집약적인 섬유류·신발류·합판 등 경공업과 좀 늦게는 조선·전자 등 일부 중화학 공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케 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는 외향적 성장 전략을 추구하여 금융·세제·행정 면에서 수출 산업을 집중 지원하여 왔다.
그러나 수출 신장에 기여해온 이러한 제 요인은 최근 들어 점차 변모를 보이고 있다. 석유 파동 이후의 세계적인 감속 성장 추세와 이에 따른 세계 교역 신장세의 둔화, 대내외 불균형의 시정에 부심하고 있는 선진제국의 신보호주의로의 선회 경향, 후발개도국의 공업화 진전에 따른 만만찮은 추격 등으로 우리의 수출 환경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 예견된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도 최근 임금 수준의 상승이 노동 생산성의 상승을 훨씬 앞지르고 있어 수출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엿보이며 각종 수출 보조 정책도 내수산업과의 형평 유지·상대국의 보복 조치 유발 가능성·장기적인 자체 경쟁력 배양 필요성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효과 내지 실익 면에서 거의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여진다.
대내외 여건의 이와 같은 변화는 곧 2백억「달러」 고지 점령에 나서려는 우리의 앞길이 그만큼 험난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남북한간 경쟁에서의 계속 우위 확보·고용 증대·생활 수준 향상 등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고도 성장을 계속하여야 하며 성장의 기본 전략 역시 종전과 마찬가지로 수출 주도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편중된 일부 시장을 중심으로 경공업 제품을 집중 수출하는 현재의 수출 구조로서는 과거와 같은 지속적인 수출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출의 질적 고도화와 양적 신장을 동시에 도모하자면 하루 빨리 공업 구조의 고도화를 이룩함으로써 수출 구조를 부가가치가 높고 거래 단위가 대형·거액일 뿐만 아니라 세계 수요 구조의 장기적 변동 경향에도 부응할 수 있는 중화학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경공업과는 달리 자본력과 기술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나은 선진국과 경쟁하여야하는 중화학 공업의 국제 경쟁력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우리의 경쟁상대는 후진국 또는 선진국의 취약 부문이었으나 지금부터는 경쟁 상대가 선진국이라는 점과 동시에 그 사람들이 강점으로 삼고 있는 산업 분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화학 제품 수출의 승패는 기술 수준의 우위 여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기업의 연구 개발 투자의 대폭 확대와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 강화, 해외 기술 도입의 자유화 등으로 국내 기술 개발 및 선진 기술 소화의 촉진을 기하는데 우리는 과감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67년에 1백억「달러」를 달성한 후 불과 3년만에 2백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축적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술 개발과 수출 증대를 같이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끝으로 해외 수요의 확대에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국내 공급 능력의 확보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오일·쇼크」이후의 불투명한 세계 경기 진행에도 기인한 것이지만 최근 수년간 우리 나라 기업의 설비 투자는 70년대 초까지 지속한 신장세가 상당히 둔화되어 일부 업종의 경우 공급 능력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 중동 특수에 따른 일부 품목의 국내 공급량 부족과 이로 인한 수출 중단 등은 그 일례로서 내외 수요의 예측하기 힘든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물적 생산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81년에 가면 2백억「달러」 고지에 이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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