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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또 하나의 명동, 광주 충장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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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큰 불이 찾아서 더욱 전국적으로 유명한 광주 충장로는 일제때 「혼마찌」(본정)라 불렸던 곳. 서울 명동과 그 때부터 이름이 같았다고 해서 요즘도 「광주 명동」이라고 통한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굵직굵직한 도매상가가 대부분이어서 전남의 상권을 좌우하던 거리였는데 어느 샌가 서울 명동처럼 유행과 젊은이의 물결로 흥청거린다.
「뉴욕」 「롱비치」 「맨해턴」 「스잔나」 「지큐」 「아마존」 「아로사」 「티파니」「노틀담」…충장로 1가에서 5가까지 2.5km의 「차량통행 제한」구역이 온통 알아보기 힘든 외국어 간판으로 춤을 춘다.
대부분이 다방과 과자점·음악감상실, 그리고 술집. 길거리에는 언제나 요란한 전파상 「마이크」 음악 소리로 더욱 붐빈다. 여기에 『서울서 유행』이라는 모든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있는 양품점들이 사이사이 빠짐없이 줄을 서 있다.

<「문학의 밤」·「감상회」>
젊은 사람들을 부르겠다는 모든 준비가 이 충장로에서 날마다 커갈 뿐이다.
고작 30분 산책로의 이 거리에 나서면 적어도 7, 8군데서 시설전이 열리고 「음악감상회」 「문학의밤」 「포크·댄스의 밤」등 붓글씨 벽보가 하나의 상술처럼 돼 버린 곳.
『아무래도 서울에서 좀 소외됐다는 기분이 들어 그나마도 우리끼리 기분을 풀고싶어 여기에 오지요』 매일 이 거리를 지나간다는 대학생 김순근군(22)은 친구들끼리 어울려 신문얘기, 문학얘기를 주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을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옷에만 신경을 쓰는지 지나가는 다리들만 쳐다보면 요즘 어떤 옷이 유행하는지를 금방 알겠다』고 「유행의 거리」를 못마땅해했다.
이 거리의 구두 수선공 한영주씨(52·광주시 서구 양동 193)는 『충장로가 이렇게 된 것은 20여년 전 「맘보」바지가 유행했을 때부터』라고 말했다.
한참 서울서 「맘보」바지가 유행하니까 광주의 멋쟁이 아가씨들은 이것을 처음 해 입고 이 거리에 나와야 부끄럽지 않게 다닐 수 있다고 모두 여기로 쏟아졌다는 것. 그로부터 「미니·스커트」 「맥시」 바람, 다시 요즘에는 그 옛날의 「맘보」 바지에 긴 가죽장화를 신은 여성들이 충장로를 메우고 있다. 장발에다 「퍼머넌트」를 한 청년도 많다. 노랑에 가까운 갈색머리로 물들인 아가씨도 특히 이 거리에 많이 몰려다닌다.
『사람들이 자꾸 서양처럼 돼가는 것 같군요.』 상점마다 쌓이는 물건, 철마다 바뀌는 유행, 이 거리의 젊은이들이 오히려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30년 토박이 한씨는 말한다.
그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지막한 충장로가 해마다 「콘크리트」건물의 서양식 「쇼·윈도」로 바뀌어지고 광주의 구수한 물건들은 이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몇 마을 건너 그 유명한 담양의 죽세품들도 충장로에선 빛을 잃는다. 지난 30년 간을 계속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백화점들과 과자점 몇 군데, 하나 같이 「서구화」그것이다.
1년이면 평균 20여 차례씩 불이 난다는 충장로. 이 동네가 대부분 일제 때의 목조건물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닥다닥 상점으로 있어 그렇게 불이 잦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한번 불만 났다하면 낡은 목조 건물들이 헐리고 TV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아담한 현대식 「쇼·윈도」가 새 얼굴을 내민다. 높은 건물들도 차차 늘어났다.

<거리도 사람도 서구화>
그래서 이곳을 드나드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맨해턴」가자』『광주의 「라스베이가스」다』라고 충장로를 별명 붙이기도 한다.
작년 10월 충장파출소옆 좁은 길의 건물들이 헐리고 옆 중앙로가 넓게 뻗어나가는 공사를 했을 때도 『또 광주가 변해간다』고 충장로 사람들은 「섭섭한 모임」이라는 술「파티」를 열기도 했다.

<50년 터주대감도 새 모습>
충장로의 이런 탈바꿈은 이 거리의 터주대감 파출소 건물이 잘 말해준다.
그렇게 많은 「개발」과 「계획」이 울려 퍼졌지만 광주의 충장파츌소는 일제 때 지어진 「주재소」. 그 건물에서 50여년을 그대로 지내왔다. 일제 때 광주만세사건 때 숱한 학생들을 끌어다 때리고 가두었던 폭정의 앞잡이 건물을 오늘의 치안담당 파출소로 그대로 보아왔던 사람들은 작년 10월 중앙로 개통과 함께 이 건물이 신축되자 『이제야 새 모습』이라고 좋아했다. 50년 터주대감이 새 건물로 바뀌어지고 만 것.
이제는 거리마다 매일매일 간판이 바뀌어지는 것이 또한 이 곳의 화제가 됐다. 경쟁이 불붙은 어느 두 화장품회사가 지난 봄 이 거리 한 건물 안에 나란히 대리점을 차리자 간판을 어떻게 붙이느냐로 무려 2개월을 승강이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두터운 정과 전라도의 상업판도를 푸근하게 모여 의논하던 거리 충장로는 이게 바야흐로 재빠르고 얄팍한 유행상가로 얼굴을 바꾼 셈이다.

<광주=황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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