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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제자 박화성>|<제58화>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비사 20년대「조선문단」전후(7)|박화성|조운의 영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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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선정한 곡에 맞추어 조운 씨가 작사한 노래를 가르치는데 그중에는 거칠고 장난꾸러기인 학생들이 있어서 가끔씩 나를 괴롭히려 들었다. 풍금소리와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위압하면서 한시간을 끝내고 나면 몸에는 사내들의 체취가 배고 동에는 땀이 촉촉하게 솟쳐 있었다.
이 시간에는 원장이나 교감이나 조운 씨까지가 가끔씩 들어왔고, 은연중에 소문이 퍼져 읍내의 인사들까지가 참관하면서 묘령의 처녀가 사내녀석들을 잘 후려서 가르친다는 칭찬까지 돌았다. 이 기이한 사제지간이 빚어낸 몇개의「에피소드」(당시에는 몰랐지만) 내 문학영토에 한줌의 밑거름이 되어 있음을 나는 후일에야 깨달았다.
원장도 문학자인데 조 운을 비롯한 당지 출신의 교원들은 거의가 시나 시조에 조예가 깊은 20대, 30대의 문학동호인이어서 심기가 상합 하고 뜻이 서로 통하는데다가 타교에서 특별히 초빙해 온 교감이나 전문 교 출신들의 세 젊은 선생들도 모두가 겸손하고 솔직하여서 교무실은 언제나 화기에 차 있었다.
조운 등의 몇몇 선생이 주동이 되어「자유예원」이라는 명칭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자작의 시나 시조·산문·단편 등을 발표하는「서클」을 만들었다.
교원이나 학생이나 읍내 유지 누구 나가 다 자유로 써내는 것인데 그 중에서 장원을 하면 중앙에 있는 잡지에 그 글을 보내어 활자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영광의 문학열은 대단하여 금 시에 많은 글이 모여졌는데 원고지를 이용한 사람은 썩 드물고 공책 장이나 인철 지나 두루 마리 장지나 하다못해 편전지 같은 종이에라도 정성껏 쓴 것들을 큰 문짝들에 붙여 주르르 세워 놓는 것이 발표의 방법이었다.
운 씨는 몇 명의 학생들과 글의 장단을 헤아려 간수를 맞춰서 압정으로(다시 뗄 수 있게) 한 장 한 장 씩 붙이는 역할을 매주마다 혼자 다 해냈다. 발표자들은 물론이요, 교원·학생·읍내의 문학동호인들도 먼 곳까지 찾아와 열 심으로 읽었다.
나는 세 번 장원을 했다. 맨 처음엔『선생께』, 두 번째가『ㅎ, ㅍ 형께』로 둘 다 서한체였고, 세 번째는『정월초하루』라는 일기체의 수상이었는데 그것을 읽은 원장 이하 여러 선생님들이 박 선생은 꼭 소설을 써야 하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특히 조 운은『정월초하루』는 1인칭의 소설로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전례대로『개벽』지에서 발행하던『부인』이라는 여성잡지에 보냈다.
머리를 곱게 쪽지고 원색의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표지의 그림이던『부인』지는 오랜 회를 계속하지 못했으나 세 번 다 내 글이 활자화했던 인연으로인지 아직도 선연하게 나타나곤 한다.
남들은 자기의 글이 최초로 활자화하면 큰 감격에서 흥분하고 기뻐하여 어쩔 줄 몰라 한다는데 나는 그때 아직도 세상물정을 몰랐던 탓일까 좋아서 날뛰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
운 씨는 비로소 내게 혹시 전에 글을 써 보았는가를 물어서 비장해 두었던「노트」다섯 권을 보였다. 노래(시라고는 할 수 없는)니, 감상문이니, 소설이니(모방소설)등등 전부터 써 모았던 것들이 오죽이나 조잡하였을까 마는, 그는 자기 집에 가지고 가서 정독하였고 시와 산문 등의 예비지식을 내게 일러주면서 거기 적혀 있는 글에 대한 평도 간단명료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의 서재에까지 안내되었고 그 많은 책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하게 보였던 그가 산더미같이 쌓인 서적 틈을 왕래하며 내게 필요한 책들을 고르고 있을 때 그가 완연한 천석꾼의 부호로 내게 부각되어 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내게 덕궁 노화의『자연과 인생』이라는 책을 먼저 주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며 처음으로 무한히 넓은 창공과, 내 가슴이 태평양처럼 툭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상쾌함과 화 안한 등불이 마음을 밝히는 것 같은 신비로움을 감각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소설 작법』『시작법』『희곡 작법』등의 소책자와 일본 문인들의 작품들을 빌어다가 꾸준히 읽은 다음「톨스토이」등「러시아」문호들의 작품으로부터 서구 문호들의 방대한 소설들을 밤을 새워 가며 독파하여 문학영역의 기초를 닦기 시작했던 것이나 운 씨는 24세인데도 아득히 먼 곳에 있는데 나는 이제야 이게 뭔가 싶어 앙앙 불락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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