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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각을 지닌 전지전능 수퍼컴이 인류를 공격한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5호 24면

영화의 개요를 몇 줄로 설명한 ‘시놉시스’ 수준에서 보면 ‘트랜센던스’는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나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 모두 흥미를 한껏 돋우는 면이 있다. ‘인간의 모든 지능을 합친 지능’과 자각기능을 갖춘 인공지능이란 소재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터넷망과 연결되고 나노기술과 결합해 모든 것을 ‘초월(트랜센던스)’하는 신적인 전지전능의 존재가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라는 질문은 의미 있어 보인다. 단 한 대로 존재하는 수퍼컴퓨터가 아니라 전 세계로 연결된 이 인공지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전원을 차단하거나 인터넷망을 파괴하는 일일 텐데, 과연 단 일 초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가 그런 해결책을 시도할 수나 있을까.

영화 ‘트랜센던스’

확실히 이 영화의 질문은 현실적인 공포를 가지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런 질문들보다는 제작자로 이름 올린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명배우 조니 뎁, 킬리안 머피, 모건 프리먼 등의 쟁쟁한 네임밸류 때문에 현실적인 기대감을 가질 것이다.

‘트랜센던스’를 만든 인공지능학 권위자 윌(조니 뎁)은 기술문명을 반대하는 테러집단의 총격을 받아 죽음을 앞두게 되고, 동료 연구자이며 사랑하는 아내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그의 뇌가 담고 있는 지식과 감정을 디지털화해 인공지능에 입힌다. 그 결과 옛날 영화 ‘사랑과 영혼’이라면 겨우 무당의 중재로 영혼으로나 만날 수 있었던 그리운 사람을 디지털화된 남편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 수퍼컴퓨터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는 모래에 나노입자를 심어 대기권으로 날려 보내 전 세계 통신망을 장악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심지어 그 사람의 몸속에 윌의 영혼과 목소리까지 심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온 세상을 통제할 수 있고 자연의 체계마저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 결과적으론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던 윌 부부의 노력이 성공한 셈이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인격을 가진 이 인공지능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인간들은 그를 ‘악한 야망’을 가진 잠재적 정복자로 판단하고 그를 물리치려 한다. 영화의 주 갈등은 전 인류를 위해서는 남편의 인격과 사랑을 간직한 인공지능 컴퓨터를 죽여야 한다는 아내 에블린의 고민이다.

분명 영화는 인공지능이나 나노기술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지적인 자극, 그리고 컴퓨터가 인간의 감정이나 지각을 가졌을 때 그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기는 한다. 그리고 나노기술로 모래바람이나 먼지 같은 것으로도 인간이나 기계, 혹은 자연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는 장면 등에서 인상적인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는 것과, 그것을 영화적으로 창조해낸 세계 속으로 관객이 빨려들어가게 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연출력의 차이라는 점을 영화는 증명하기도 한다.

SF 영화에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매트릭스’) 혹은 디지털의 세계(‘아바타’) 혹은 꿈속의 세계(‘인셉션’)의 차이가 주는 데서 오는 환상 혹은 공포의 크기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영화가 제시하는 전제와 논리를 관객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몰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수퍼컴퓨터의 화려한 위용, 인간을 컴퓨터의 좀비 같은 부하로 만들 수 있는 능력 등은 거대한 전시장의 진열품과 프레젠테이션을 구경하는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고, 그것이 자아내는 공포 역시 관객인 내가 뒤집어쓴 공포가 아니라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정도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 공포에서 벗어나려 하는 강한 열망에 공감할 수 없고 신적인 우월함을 가진 컴퓨터와 바주카포로 대결하는 인간의 승부는 김이 빠져버린다. 컴퓨터의 기능, 성장, 위험성, 갈등, 해결책 모두 화면으로 보여주어 공감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고비마다 배우들의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해버린다.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무시무시한 능력의 컴퓨터에 대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걸 두려워한다. 감정은 논리적이지 않다”며 기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과 모든 기술을 초월한 사랑의 힘인 듯하나, 그마저도 어째 억지로 덧붙여진 의미인 것처럼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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