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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반 예술성 뚜렷 2대국 제전|파리와 사웅파울루·비엔날레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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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제14회 「사웅파울루·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가는 도중 「파리」에 들러 때마침 개최되는 제10회 「파리·비엔날레」도 보았다. 세계 3대국 제전하면 제일 오래된 「베니스·비엔날레」와 「사웅파울루·비엔날레」, 그리고 「파리·비엔날레」를 손꼽는다. 그와 같은 3대 국제전의 둘을 동시에 보았기에 1977년에 가장 새로운 세계 미술의 모습을 직접 피부로 느꼈거니와 그 두 국제전의 성격이나 방향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국제전은 가장 새로운 조형의 실험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위적이고 탐구적이다.

<파리·비엔날레>
(10월15일∼11월30일)출품 작가가 35세미만으로 한정돼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연령이 기존 미학에 물들지 않고 대담하고도 실험적인 조형 탐구를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청년 전위의 이 광장은 10회를 거듭해 오는 동안 가장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세계 미술에 앞장서서 이미 이루어진 미학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에 없이 무기력한 상태로 새로운 문제의 제시도 없이 안이하게 전개돼 「파리」의 신문들은 이 전람회를 『이미 3년전에 다 써먹은 것의 재탕』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종래의 날카로운 파괴력과 새로운 것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뜻이 된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많은 「비디오」작품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현대의 「테크놀러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3차원의 세계를 벗어나서 4차원, 즉 시간을 공간예술과 동화시키는 데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조건의 부조리에 대한 도전이나 문명 비판보다는 오히려 자아에 대한 파괴와 그 파괴의 터전 위에 새로운 미래상을 세우는데 급급하였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참가한 정재규씨의 사진에 의한 작품도 그런 영상을 통한 작업으로 주목 할만 하였다.

<사웅파울루·비엔날레>
(11월1일∼12월15일)전에 없이 변모된 양상으로 전개됐고 그 변모의 진상은 대상을 3차원적 조형, 즉 회화·조각·입체뿐만 아니라 음향·사진극·대중 음악 등 광범위한 예술의 세계로 범위를 확대했다.
따라서 전람회의 성격은 당연히 전위적인 것이 되고 그 전위는 마침내 반 예술로 초점을 고정시켰다. 반 예술이란 결국 비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 자체도 하나의 예술의 「장르」다.
이곳 신문들은 한결같이 「반 예술의 승리」라고 큰 활자로 쓰고 있다.
이것은 곧 모든 영상 예술을 중심으로 한 미의 질서에 있어서 반 예술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작품은 이그러진 인간상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공포를 조성하였고 도자기를 수천의 파편으로 깨뜨려 마루 위에 늘어놓음으로써 철저한 파괴 본능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개인 단위의 작품보다는 집단적인 합작으로서 복합적인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을 탄 「아르헨티나」의 작품은 7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물체를 형성했는데 그 7개는 한 덩어리가 돼 하나의 문제를 이룩하고 있었다.
이번 한국에서는 김창렬 하종현 이승조 이강소씨 등이 평면적인 화폭을 출품했는데 주목받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심사 과정은 지극히 모호한 점이 있어서 앞으로 국제전은 상이 없어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입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의 「다마요」의 특별 전시 회고전은 이번 「비엔날레」의 꽃이라고 할만큼 이목을 모았다. 【이경성 (홍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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