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가 "석달 안에 3판 출간" 장편소설이 잘 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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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 3년전부터 일기 시작한 문학단행본 「붐」의 현상은 금년에 이르면서 절정에 이른 듯한 느낌이다. 초판 1천∼2천부의 통례는 「3천부 이상」으로 바뀌었고 어지간히 이름깨나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집들은 『한달내 초판매진, 3개월이면 3판 출간』의 새로운 정설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현상에 따라 한국문학작품은 서점가에서 외국문학작품을 압도하게 되었고 문학전문출판사들은 물론, 이제까지 다른 분야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던 출판사들까지 문학단행본 경쟁에 뛰어들어 출판계에서는 「작가 잡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 73년 최인호씨의 『별들의 고향』이 독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서 서점가가 집계하는 「베스트셀러」순위도 매달 달라져 작가들의 인기경쟁인 듯한 느낌을 준다.
금년 하반기에 접어든 7월 이후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차지했던 작품은 조해일씨의 『겨울여자』, 최인호씨의 『도시의 사냥꾼』, 한수산씨의 『부탁』, 박완서씨의 『휘청거리는 오후』등. 그러나 이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은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있다는 것이 서점가의 이야기다.
이들 외에 아직 수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베스트셀러」「리스트」의 상위를 점하고 있는 작품들이 김성종씨의 『여명의 눈동자』, 황석영씨의 『장길산』, 조해일씨의 『지붕 위의 남자』, 한수산씨의 『해빙기의 아침』, 김주형씨의 『목마 위의 여자』등이다.
『별들의 고향』이 5만질(10만권)이 팔렸을 때 출판계와 서점가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입을 벌렸지만 그 기록은 쉽게 깨지리라는 것이 요즘의 이야기다. 단행본인 『부초』는 이미 5만권이 팔렸다는 것이며 『겨울여자』와 『도시의 사냥꾼』은 곧 『별들의 고향』이 세웠던 기록을 넘어서리라는 것이다. 다소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의 책이 팔렸으면 작가도 상당한 인세를 가져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작가에게의 인세는 보통 정가의 10%가 지급되고 있는데 예컨대 정가 2천원(2권1질)의 책이 3만질 팔렸다면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6백만원에 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특정한 몇몇 작가의 특수한 예에 불과하지만 요즘 한달 평균 20∼30권 나오는 장편소설 창작집의 경우도 반수이상은 쉽사리 1만권 선을 돌파한다는 게 공공연한 이야기이다. 정가 1천원짜리 책 1만권에 대한 인세는 1백만원이니까 지금 원고료가 많이 인상됐다고 해도 책만 내면 그냥 들어오는 인세에 비하면 아직 싼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학단행본 「붐」의 현상에는 문젯점도 없지 않다. 책이 많이 팔리게 되면 작가는 그만큼 더 독자를 의식하게되고 그 결과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오도할 위험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 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의 모두가 장편소설들이어서 단편문학을 위축케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몇 작가들이 문예지에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여 평단의 주목을 끌었으나 이들이 출간한 단행본이 의외로 저조하다는 것으로도 입증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와 작가가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만 문학단행본 「붐」의 현장을 문학의 발전형태와 연관있는 것으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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