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여초·김용현|"성장규모에 맞게 안전기준도 높이자"|천재와 인재-김태길 교수(서울대)와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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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이리역 참사사건, 장성탄광 매몰사고 등 대형사고들이 잇달아 발생, 끔찍한 재난을 몰아왔습니다. 이들 대형사고는 어떻게 보면 안전관리가 뒤따르지 못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 도사린 「폭약」이 마침내 폭발한 듯한 느낌인데….
김태길 교수=우선 이들 사고는 안전관리의 소홀로 인간의 행위가 사고의 방아쇠가 된 「인재」라는데 문제가 있읍니다.
무서운 힘을 가진 현대과학기술을 전제로 한 고도의 경제성장은 그에 비례하는 대형 안전사고 등 인재의 위험성을 더욱 증가시킨게 사실이지요. 더우기 근대화의 열풍 속에 가속적으로 진행된 우리의 경제성장은 그와 속도를 함께해야 할 안전관리를 너무나 소홀히 해왔던 것 같습니다.
뒤늦었읍니다만 이제부터라도 모든 산업부문의 안전관리를 철저히 점검하지 않으면 더 큰 참화를 당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이번 대형 사고들의 근본 원인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 교수=가깝게는 모든 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책임자들이 좀더 앞을 멀리 내다보는 시야가 결여된채 무사안일의 일상주의에 묻혀 있다는 것과 치밀한 합리적 사고의 결여를 들수 있겠지요.
도대체 화약을 실은 화차에서 촛불을 켰다는 것은 전혀 상식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시해야 할 것은 현대사회가 과학기술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선도되고 악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에는 인간의 윤리의식이 뒤따라야 합니다. 과학기술을 「컨트롤」하는 것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적 측면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윤리적 측면이 경시되는 우리사회현실은 시급히 시정돼야겠읍니다.
천재라고 하는 것들도 이제는 과학의 힘을 과신한 인간이 자연에 반역한 결과 생긴 재해, 즉 인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 대 인간의 역학관계를 역전시킨 현대문명에서 비롯되는 재난은 천재와 인재를 구별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류의 자연파괴를 극소화 시킬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이겠읍니까.
김 교수=지구의 자연은 인류가 의탁하고 사는 유일무이한 우주의 「오아시스」입니다. 인간은 산업화나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파괴가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스스로 자기억제의 윤리적 노력과 신념의 체계를 세워 행동해야겠지요.
―대소 사고가 있을때마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해 빈축을 살 때가 많은데….
김 교수=「책임」을 진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사고나 문제에 대한 만성적인 책임감의 결여는 모든 재난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책임감이 투철했다면 모든 안전수칙을 준수했을 것이고 사고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겠지요.
―앞으로도 이번에 못지 않은 대형사고가 절대로 발생치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데…. 근본적인 방지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 교수=무엇보다도 인간의 윤리적 변혁이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돼야겠지요. 사고의 방지를 위해서는 지적 행위보다는 몸에 밴 윤리적 행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 국가사회의 이익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철저히 교육되고 자기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정립돼야합니다.
기술적으로는 과학의 발달과 산업발전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겠구요. 그리고 경제성장 속에서 눈에 안보이게 진행되는 인제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 정책적으로 보다 철저히 강구돼야겠습니다.
―재난을 당할 때마다 수습을 위한 동포애가 거국적으로 번지곤 합니다. 이번에도 이리참사에 온 국민의 열렬한 성원이 보내지고 있는데….
김 교수=서구 개인주의 사회와는 달리 두터운 상부상조 정신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입니다. 그러나 사고를 당했을 때만이 아닌 평소에도 그같은 기풍이 더욱 절실한 것 같습니다. <이은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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