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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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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무리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어도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 정년 제도다. 그래서 정년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좌절과 소외감을 안겨 주는 절벽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제도가 널리 채용되어 온 까닭은 인간의 노동 능력이 어느 시점에 가면 저하된다는 관념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을 전제할 때 정년 제도는 능률의 저하를 막고 조직의 신소 대사를 원활하게 한다는 논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정년제도의 논거가 되는 전제 자체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노년기가 되기까지는 작업능률·분석 및 판단력·계산 능력 등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전문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더구나 오랜 체험에서 얻어지는 원숙함은 젊은이들을 가지고서는 대체하기 어려운 면이다.
또 오랜 근무를 통해 쌓아 온 직장에 대한 기여를 단순히 경영 합리화나 능률향상이란 명목으로 도외시 해 버리는 것은 사회 정의란 차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능률」에 비하면 신진 대사란 측면은 젊은 노동인구가 늘어나는 현실에 비추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 듯도 하다.
그렇지만 고용 기회가 확대되어 가는 사회에선 정년 제도가 새로운 고용기회 창출에 기여하는 폭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정년제도가 경직하게 운영되면 당하는 개인의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년 제도운영은 극히 경직적이었다.
우선 정년 연령이 너무 빠르다. 공무원의 경우 일반직은 55∼61세, 공안 직은 50∼61세, 기능직은 40∼61세, 군인은 43∼60세, 교사는 65세로 되어 있다.
노동청 조사에 의하면 22개 금융·보험 업체와 12개 국영 기업체의 정년은 일률적으로 55세다. 또 민간 대기업의 경우는 조사 대상 38개업체 중 29개 업체가 55세, 8개 업체가 60세, 1개 업체가 50세를 정년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과 북구 제국의 공무원 정년은 70세, 영 서독 이는 65세,「프랑스」는 60세 까지다. 민간 업체의 경우에도 미국은 자발 퇴직 65세, 강제 정년 68세, 영 서독 등은 65세까지의 정년이 보통이다. 더구나 구·미의 경우에는 정년 연령 보다 연금수급 연령이 대체로 앞서 있어 정년 후에도 생계 걱정이 없다.
우리의 정년 제도는 이렇게 연령이 과도하게 빠를 뿐 아니라 융통성 마저 적다.
외국의 정년제도=특정한 경우에 정년을 연기 할 수도 있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앞당겨 퇴직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자발적 퇴직과 강제 정년의 연령차는 3∼5년이 보통이며, 자발적 퇴직의 경우에는 강제 정년까지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상당 분을 지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원의 경우 부분적으로 이를 적용하고 있을 뿐이다.
현행 공무원 정년제도가 생겨났던 60년대 초의 한국인 평균수명 57·5세가 75년에 이미 68세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정년 연령 60세 이상으로의 연장 검토는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정부의 검토 과정에서는 단순히 정년을 연장하는 것 외에 퇴직제도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법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헌법이 보장한 노동의 권리는 합리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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