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TV - AT&T, 합병 밀고당기는데 … 뒤에서 웃는 버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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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4)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위성방송서비스회사 디렉TV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보유한 까닭이다. 바로 인수합병(M&A)이란 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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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핏의 노림수가 12일(현지시간) 결실을 볼 전망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로이터통신 등은 협상 관계자의 말을 빌려 “통신회사인 AT&T가 디렉TV를 사들이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 등은 “곧 두 회사의 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AT&T가 제시한 가격은 주당 95~100달러 선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100달러에 타결되면 인수대금은 500억 달러(약 51조5000억원) 선에 이를 전망이다.

 M&A가 성사되면 버핏의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버핏은 디렉TV의 10대 주주 가운데 한 명이다. 3651만47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7%에 이른다. 더욱이 버핏의 전체 포트폴리오 가운데 여덟 번째로 큰 종목이다. 버핏은 관례대로 주당 매입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버핏과 소로스 등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제공하는 그루포커스는 “주당 평균 매입 가격이 35달러 선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당 100달러에 M&A가 타결되면 버핏은 2.87배 정도 수익을 챙기는 셈이다.

 그루포커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버핏은 M&A 성사 뒤에도 디렉TV 주식을 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디렉TV 실적개선까지 곁들여지면 주가가 주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터무니없는 예측은 아니다. 12일 현재 디렉TV 주가는 87.17달러다. 버핏의 수익이 300%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3년에 걸친 주식매집의 결과다. 버핏은 2011년부터 디렉TV 주식을 사 모았다. 버크셔해서웨이 등에 따르면 그는 2011년 디렉TV 주식 187만8200주를 사들였다. 버핏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눈에 띄는 비중은 아니었다. 최근 투자전문 배런스는 “버핏의 모방 투자자들도 당시엔 그의 디렉TV 주식 매집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한 해 뒤인 2012년 버핏이 보유한 디렉TV 주식은 1370만 주로 불었다. 7.2배나 급증한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월가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사실 디렉TV는 버핏이 즐겨 사는 종목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는 보험 외에 철도·에너지·금융 등 굵직굵직한 종목들을 주로 사들였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버핏이 디렉TV처럼 눈에 띄지 않는 종목을 사들인 점을 월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듬해인 2013년 버핏은 한술 더 떴다. 디렉TV 주식 보유량을 3651만 주 정도까지 늘렸다. 올해 초 CNN머니는 “디렉TV가 미국 말고도 남미 지역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버핏이 주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라고 전했다. 이때까진 통신회사와 위성TV회사가 궁합이 맞을 것이라곤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AT&T와 디렉TV M&A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AT&T는 디렉TV를 사들인 뒤 집전화, 이동통신, 브로드밴드, 디지털 TV 등을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할 요량이다. 마켓워치는 “버핏 또는 적어도 버핏 사단이 동영상 콘텐트를 보유한 디렉TV가 통신회사의 구애를 받을 수 있음을 간파하고 주식을 사 모은 것으로 보인다”며 “두 회사의 M&A 덕분에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이 바로 버핏”이라고 했다.

강남규 기자

◆디렉TV=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위성TV서비스회사. 미국과 남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음악과 스포츠·드라마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가입자 수는 3600만 명 정도다. 지난해 매출액은 318억 달러 정도이고 순이익은 29억 달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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