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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펀드, 헉헉대는 운용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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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모(32)씨는 지난달 말 롱숏펀드에 가입하려고 운용보고서를 읽다 가입을 포기했다. 보고서만 봐서는 각 펀드의 특징을 알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주식은 매수(롱)하고 떨어질 것 같은 주식은 공매도(숏)하는 전략을 쓰는 펀드다. 하지만 정작 보고서에는 롱 전략에 대한 부분만 개제돼 있을 뿐 숏 전략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정씨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온라인 펀드수퍼마켓을 이용하려 했으나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 결국 증권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펀드를 외면하는 투자자를 잡기 위해 운용업계가 롱숏펀드 같은 신종펀드를 꾸준히 내놓고 있지만 운용보고서는 제대로 작성되지 않고 있다. 시장은 커지는데 투자자들은 깜깜이 투자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롱과 숏 전략을 동시에 쓰는 롱숏펀드, 전체 자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주식·부동산이 아닌 자산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 총 자산의 40% 이상을 다른 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가 대표적인 신종펀드다. 2011년만 해도 5조8800억원 규모던 게 올 5월 현재(7일 기준) 10조96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펀드시장 자금의 10%는 이들 펀드로 몰릴 정도로 비중도 커졌다.

 하지만 운용보고서는 부실했다. 2011년 1870억원에서 올해 2조6500억원 규모로, 3년여 만에 14배 넘게 커진 롱숏펀드 운용보고서는 증권업계에서 반쪽짜리란 평가를 받는다. 투자(매수) 비중이 높은 업종과 종목에 대해선 상세히 담고 있는 반면 숏 전략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지난달 공개한 최근 보고서부터 숏 전략을 쓴 상위 10개 업종을 공개하는 정도다. 이 역시 종목 정보는 포함하지 않는다.

 롱숏펀드 운용보고서엔 투자 가늠자가 되는 주요 지표도 없다. 순노출도(넷익스포저)와 총노출도(그로스익스포저)가 대표적이다. 순노출도는 롱 전략과 숏 전략의 비중 차이를, 총노출도는 두 전략 비중의 합을 뜻한다. 순노출도가 높으면 코스피 시장 움직임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횡보장에선 순노출도가 낮은 롱숏펀드가, 상승장에선 높은 롱숏펀드가 유리하다. 총노출도는 숏 전략으로 인해 생기는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총노출도가 크면 수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손실도 커진다. 신민규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부 차장은 “미국에선 순노출도와 총노출도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그래픽화해 표기하는 반면 국내 보고서엔 언급되지 않는다”며 “투자설명서에 가이드라인이 표기된다고 하지만 운용 과정에서 변하는 만큼 보고서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전이나 선박, 셰일가스 인프라 투자회사(MLP) 등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는 실제 운용 현황과 동떨어진 보고서를 내고 있다. 미국 현지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우고 이 SPC가 유전회사에 투자하는 형태인 유전펀드의 경우 보유 자산 대부분이 SPC 주식임에도 보고서엔 파생상품으로 표기된다. 유전펀드를 운용 중인 한 운용사 측은 “해외 비상장 주식은 가치 평가가 어려워 파생상품으로 분류해 평가하는 식으로 수익률을 계산하고 있다”며 “정확도가 떨어지다 보니 유전회사의 손익계산서를 중심으로 한 보고서를 따로 작성해 제공한다”고 해명했다.

 해외 펀드를 국내에서 판매할 때 주로 활용되는 재간접펀드의 보고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블랙록자산운용 등은 모펀드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보여줄 뿐 모펀드가 어떤 종목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는 표시하지 않았다. 반면 얼라이언스번스틴운용처럼 모펀드 운용보고서를 번역해 공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펀드의 자산 보유 현황은 알 수 있지만 실제 이 펀드가 편입하고 있는 자산은 알 순 없다. 이들 펀드는 투자금으로 모펀드에 편입하는 한편 일부는 환 헤지용 파생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들은 남 탓만 하고 있다. 관리·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신종펀드가 최근에야 인기를 끌다 보니 아직 검토하지 못했다”면서도 “보고서 작성 형식을 개발·적용하는 건 금융투자협회를 비롯한 업계에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운용보고서 작성 형식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는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다양한 펀드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작성 형식을 일일이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각 운용사에서 기존 형식을 변형해 쓰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운용사에선 “금투협과 금감원이 정한 작성 지침에 맞추다 보면 실제 투자 자산과 전략을 표기하기 어렵다”고 발뺌했다. 이범용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책임연구원은 “온라인 펀드수퍼마켓이 활성화되면 정보 공개가 더욱 중요해진다”며 “세 주체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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