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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달이 뜨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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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보름달 뜨는 때를 ‘망(望)’이라 한다. 햇빛을 온전히 받아 안은 달이 가장 둥글고 가장 환히 빛나는 날을, 우리는 ‘희망’할 때의 그 ‘망’자를 써 부른다.

 오늘이 바로 그 망이다. 음력으로 4월 16일이다. 망은 보통 보름날 하루보다 음력 열닷새와 열엿새 이틀을 가리킨다. 열엿새는 월출(月出)을 잡으려는 사진작가들이 한 달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달을 좇는 사진작가들은 열닷새보다 열엿새에 뜨는 달이 더 동그랗다고 믿는다.

 망은 지구 양옆으로 해와 달이 일직선에 놓이는 날이다. 반대편의 해와 달이 지구를 서로 잡아당겨 지구에 미치는 해와 달의 인력이 가장 강한 날이다. 하여 망이 되면 바다가 험해진다. 지구 양쪽에서 바다를 끌어당기니, 하루에 두 번 들고 나는 바다의 운동이 커지는 것이다. 물살이 제일 빨라 바다가 가장 흐린 날이 망이다.

 바닷물의 움직임을 시간 개념으로 표현한 우리말이 ‘물때’다. 갯마을 달력에 물때가 적혀 있다. 오늘은 물때로 일곱물이다. 보름달 뜨는 열엿새와 그믐달 뜨는 초하루가 일곱물이다. 망을 맞은 날을 우리말로 ‘사리’라 한다. 보름달 뜨는 날, 망, 일곱물, 사리. 모두 한 날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이 난 날이 한 달 전 여덟물이었다.

 망을 지나면 ‘물이 죽는다’. 다시 말해 유속이 느려진다. 오늘이 일곱물이니까 이레가 더 지나야 물살이 제일 느려 바다가 가장 맑은 ‘조금’이 된다. ‘소조기(小潮期)’와 ‘정조기(停潮期)’라는 말도 있다. 소조기는 조금의 한자어고, 정조기도 물이 멈춘 기간을 뜻하니 역시 조금 때를 이른다. 조금에는 유속이 사리의 절반 정도인 초속 1.2m까지 떨어진다. 조금의 밤에는 반달이 뜬다.

 뱃사람들은 사리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거친 바다가 위험하거니와 고기가 없다. 대신 갯벌은 부산해진다. 사리 물이 나면 가장 넓은 갯벌이 드러나서다. 바다가 들고 나는 대로 바다에 기댄 삶도 들고 난다. 바다의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여서 물때에 미신을 얹기도 한다. 갯마을에서는 물때에 맞춰 상여가 나간다. 정조 때나 물이 들 때 관을 내린다. 조금에 난 송아지가 어미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말도 전해온다.

 한 달째 온 나라가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온 국민이 뱃사람의 언어를 원래 제 것인 양 부리고 산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야속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하필이면 오늘은, 희망의 날이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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