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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김정은 뽐낸 전용기, 해외선 운항금지된 노후기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의 전용기가 새 단장을 했습니다. 지난달 초 백두산 삼지연 방문 때 첫선을 보였는데, 한 달여 만의 큰 변신입니다. 흰색 동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자도 큼지막하게 새기고, 인공기도 그려넣었습니다.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본뜬 듯합니다.

 이번 전용기 운항은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공군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참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10일 김정은 부부가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과 공군 의장대 사열 장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행사가 열린 날짜와 장소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이라고 전했죠. 물론 우리 정보당국은 위성정찰과 감청 등으로 9일 오전 행사가 열린 걸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50㎞ 날아가 착륙 … 과시 이벤트

 핵심 정보 관계자는 “전용기 동선을 추적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귀띔했습니다. 김정은은 평양 중구역 집무실에서 북쪽으로 22㎞ 떨어진 평양순안비행장으로 차량 이동해 전용기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가 착륙한 곳은 북한 공군의 핵심기지인 온천비행장. 이곳은 평양(행정구역상 직할시)에서 남서쪽으로 50㎞ 떨어진 남포특별시에 속해 있습니다. 이륙하자마자 착륙 준비를 해야 하는 짧은 거리인데 전용기를 띄운 거죠. 당국이 내린 정보판단은 ‘통치행보 과시를 위한 이벤트성 운항’이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으로서는 자신도 여느 외국 정상들처럼 전용기로 다닌다고 뽐내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가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그의 전용기가 1963년 첫 생산을 시작한 옛 소련 일류신(Ilyushin) 제작사의 IL-62 기종(일반 여객기라면 186인승)이란 게 드러났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파일을 확대해보니 동체와 날개 곳곳이 땜질 처리됐고, 페인트로 덧칠된 게 드러납니다. 통일부는 12일 “안전성 문제로 관련 국제기구가 해외운항을 금지시킨 모델”이란 사실을 밝혔습니다. 스타일을 구긴 김정은이 새로 전용기를 구매하겠다고 나서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요트·벤츠SUV 타고 아이맥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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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엔 강원도 원산 등 지방도시를 갈 때 경비행기인 미국 세스나(Cessna)사의 기종을 자주 탄다는 게 정보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차량이동 때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특수 방탄세단을 이용하는 데 최근엔 차체가 긴 메르세데스 S클래스 리무진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메르세데스 GL-63AMG도 종종 등장합니다. 열차를 이용한 김정일과 다른 점입니다.

 지난해 5월 김정은의 군부대 수산사업소 방문 때는 그의 전용요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구입가만 80억원인 영국제 초호화급인 ‘프린세스 95MY’ 모델입니다. 승마를 즐기는 김정은의 애마는 미국 원산 아파루사입니다.

 김정은의 물건 가운데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눈길을 끕니다. 해외(스위스 베른) 유학파인 김정은은 회의 때 스마트폰과 차량 열쇠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경우가 드러납니다. 김정은이 직접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만 HTC사 최신형 휴대전화 제품을 쓰던 김정은은 최근 들어 중국산 본체에 ‘아리랑’이란 자체 상표를 붙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걸로 나타납니다. 김정은의 집무실 책상 위 컴퓨터는 미국 애플사의 제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반미(反美)를 최고 가치로 내세운 북한 정권의 최고지도자가 왜 미국 물건을 애용하느냐는 겁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때 시신을 운구한 차량이 모두 미국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이었던 점도 수수께끼입니다. 조기 유학 시절 우상이던 전미프로농구협회(NBA)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불러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친분을 과시하는 김정은의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며칠 전 버락 오마바 대통령에게 인종차별적 비난을 퍼부은 북한 당국의 행태를 떠올리면 씁쓸한 느낌입니다.

 2010년 9월 처음 등장한 김정은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북한정권 수립 시기의 젊은 김일성 모습과 닮은꼴인 게 드러나면서 할아버지의 통치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왔죠. 인민복 차림에 통이 지나치게 넓은 바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세대로서의 면모도 드러납니다. 부인 이설주와 스위스 모바도 명품 커플시계를 차고 나온 게 대표적입니다. 아버지의 투박한 선글라스와 달리 김정은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탁자·재떨이 어딜가든 따라다녀

 김정은의 스타일을 연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굴까요. 부인 이설주가 1순위로 꼽힐 수 있겠지만 당국의 판단은 다릅니다. 여동생 여정의 입김이 절대적이란 겁니다. 평양 로열패밀리의 명운을 거머쥔 김정은의 이미지 메이킹은 안방주인이 아닌, 더 큰 틀에서 치밀하게 전략을 짜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정은이 지방 이동 때나 군부대 방문 시 의자와 탁자·재떨이까지 평양에서 미리 가져간 것으로 배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지적입니다. 무자비한 숙청과 롤러코스터식 인사, 좌충우돌의 리더십으로 요동치는 북한 권력 속에서 김정은이 어떤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줄지 지켜보겠습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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