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외교의 이상과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카터」미국대통령의「도덕외교」에 대한 현실주의적 성찰이 집권층내의에서 동시에 강조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지난 19일자「볼티모어. 선」지에 게재된「에세이. 칼럼」에서「카터」대통령 자신은『인권옹호가 미국 외교정책의 유일한 정책일 수는 없다』고 밝히고 평화가 문자 그대로 생존의 문제인 오늘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때를 같이해서「헨리·키신저」전 국무장관도 한 연설을 통해『인권에 대한 관심 때문에 국제적인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의 두 발언은 물론 똑같은 발상과 목적의식에서 나온 주장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 외교정책이 현실적인 국가이익 개념과 보편 타당한 균형감각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는 서로 공통된다 하겠다.
건국이래 미국의 외교정책에는 현실주의적 측면과 이상주의적 측면의, 두 개의 커다란 흐름이 있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토머스. 제퍼슨」적인 미국의「이상」과, 세계국가로서의 미국의「현실」은 그 어느 편도 배타적으로 절대화되거나 보편화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특히 오늘날처럼 세계전체가 고도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각자 고유한 위기대책과 발전「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때일수록 미국의 이상주의는 현실적인 적합성과 상대성을 뛰어넘어 추구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령 미국이 그 자신의「제퍼슨」적인 이상에 비추어「칠레」의 현재상황에 불만인 나머지 집권「피노체트」정권에 대한 일체의 지지를 철회하여 결과적으로「칠레」정권의 위기를 조성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피노체트」정권을 적대해서 대두할 주도세력은 미국이 기대하는 우파 자유주의세력이나 기민 당이 아니라, 필시 그 자유주의를 적대시할 좌익 혁명세력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러한 불행한 가상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원인은 바로 현실감각을 도외시한 성급한 이상주의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이런 모순된 역효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은 불가불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한 가장 중도적이고 신중한 외교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그 동안 미국의「카터」대통령은 이른바「도덕외교」의 기치 하에「닉슨」「포드」「키신저」외교가 구축해 놓은 세계의 기존질서를 적지 않게 뒤흔들어 놓은 것이 사실이다.
추상적으로 볼 때 그러한 외교철학은 인류 보편의 고매한 이상적 지표를 재확인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자유국가들이 한결같이 견지하고 있는 이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권 9개월간의「카터」의「이상주의」는 문제해결이나 국제질서 확립이라는 외교 본연의 기능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결함을 드러낸 것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SALT의 정체, 등소평의 대미 강성발언, 중동평화협상의 답보, 핵 문제와 관련한 우방과의 마찰, 그리고 도덕외교를 둘러싼 물의 등 이 그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뜻하지 않은 역효과가 그대로 방치될 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여러 가지 처리하기 곤란한 외교적 혼란에 빠져들 우려가 적잖은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카터」대통령의 솔직한 성찰과 「키신저」박사의 현실 중시 론에 당면해서 그것이 미국외교의 보다 신중하고 균형 잡힌 중도적 정착을 자 기하는 한 신호로 간주해 보고자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