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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뒷전, 인신 공격 난무-연극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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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연극계에는 평론가와 제작자·작가들이 어울려 인신공격을 포함한 극단적인 대화만을 주고받는 원색적인 논쟁이 만연, 한국 연극의 비평 부재·반박 부재 현상을 또 한번 드러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이진순)가 발행하는 『한국 연극』 8월호는 연극 평론가 이태주·이상일씨를 반박하는 극작가 하유상씨의 글 『비평이란 이름으로 휘둘러진 흉검』과 권성덕·김금지(이상 배우) 김도훈(연출가) 이강백(극작가)씨 등 비교적 젊은 연극인들의 좌담회인 『창작극과 폭평』을 통해 금년 상반기(1∼6월) 평론가들의 연극평에 대해 불신과 반박을 가졌다.
작년 9월 『왜 그러세요』(이근삼 작)를 중심으로 이를 혹평한 이상일씨와 이를 반박한 작가와의 사이에 있었던 격심한 논쟁이 꼭 1년만에 재발한 셈이다.
더구나 금년에는 ▲「현대극장」이 공연한 『빠담빠담빠담』의 「저질 상업성」을 둘러싼 이태주씨와 「현대극장」대표 김의경씨의 공방전 ▲국립 「예그린」예술단의 「뮤지컬·드라머」 『이런 사람』(이근삼 작)이 저질이라는 이상일씨의 평과 이를 반박하는 윤치오씨(국립극장장)의 평론 공해 논쟁 ▲극단「광장」의 『뿌리』(알렉스·헤일리 원작·하유상 각색)에 대한 이태주씨와 하유상씨의 「붕괴된 예술 정신」 논쟁 등이 거의 동시에 터져 평론가 대 연기자·연출가·작가들의 논쟁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특히 이 같은 논쟁들은 이태주씨의 상반기 연극 평 중 『뿌리』부문에 대해 각색자 하유상씨가 『한국 연극』에 제기한 반박문을 계기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연극평의 5배 가까운 지면(9페이지)을 통해 피해자 고발 형식으로 쓴 하씨의 글은 이태주씨가 『뿌리』를 「붕괴된 예술 정신」과 「저질 오락물」이라고 매도한데 대해 『뿌리』의 예술성을 옹호했다. 이와 함께 이태주씨를 향해 『평자로서의 양식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혹시 이태주씨는 「까는」것만이 평론의 능사로 착각하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 같은 평론가 대 작가의 인신공격들은 연기자·연출가들의 좌담회인 『창작극과 폭평』에서도 나타나 ▲권성덕씨는 평론가를 「연극 근처업」으로 ▲김금지씨는 평론가들에게 『문장력부터 길렀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김도훈씨는 『환자화 돼 가는 평론가』들이라고 극언하기도 했다.
일부 평론가와 연기자·연출가·작가들이 이처럼 깊은 갈등을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양자의 상호 무시 때문. 평론가들이 한국 연극 중 예술 수준이 낮은 저길 연극이 많다고 지적하는데 대해 연기자·연출가들은 제작 과정과 극작의 어려움을 겪어 보지도 않은 평론가들이 덮어놓고 연극을 혹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태도다.
한 연극 관계자는 연극 평론만이 공연된 작품에 대해 후세에 전하는 유일한 객관적 기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단 관계자들이 평론에 대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양자의 인신공격을 포함한 극한 대립의 악순환에 대해 대부분의 연극인들은 예술 이론 논쟁이 아닌 이상 연극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없다고 밝히고 즉시 중지 할 것을 요구했다.
연극 평론가 여석기 교수(고대)는 비평과 반박은 연극의 내용과 본질적인 것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양상은 인신공격에 치중, 비평 부재·반박 부재의 예술인답지 못한 추태라고 개탄했다. 여교수는 평론가도 신이 아닌 이상 『연기를 그만둬라』 등의 극언을 피하고 연극계에 비판을 하면서도 희망을 북돋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또 원로 연극인 서항석씨는 비평을 받는 사람이 『아픔은 느끼지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비평의 한계라고 밝혔다. 따라서 건전한 비평·반박이 되지 못하는 최근의 연극계 논쟁은 차원 높은 이론 논쟁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관객들로부터도 외면 당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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