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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장섭의 세상탐사

워런 버핏의 재벌식 경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워런 버핏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 투자가 중 한 명이다. ‘가치투자의 귀재(鬼才)’로 흔히 알려져 있다. 코카콜라와 같이 어느 정도 독점력을 갖추고 성장 전망이 좋은 주식을 골라 오래 갖고 있어서 큰 수익을 올린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결과 지금 시가총액 약 3000억 달러(약 330조원)로 세계 5위 수준의 그룹으로 올라서 있다. 주식 하나의 가격만 16만 달러(약 1억7000만원)다. 버크셔의 주식은 1965년부터 연평균 20%씩 올랐다.

그런데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버크셔가 단순한 투자펀드가 아니라 굉장히 다각화돼 있는 재벌이라는 사실이다. 버크셔의 자산 중 코카콜라와 같이 단순투자용으로 갖고 자산은 전체의 24%에 불과하다. 나머지 76%는 사업용 자산이다. 전 세계에 33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버크셔는 19세기 직물회사로 출발했다. 버핏은 망해가던 이 회사를 1964년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험회사 GEICO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현재 버크셔 산하에는 잡탕같이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사업체가 있다.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BNSF(철도회사), 시스캔디(사탕), 애크미브릭(건축자재) 등이 있고, 최근에는 토마토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가 계열사로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1997년 금융위기 직후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금융위기 원인이라며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비핵심 사업’을 빨리 정리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따라 국내 그룹들은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 정부가 버핏에게 “너저분하게 여러 사업체 갖고 있지 말고 빨리 핵심 사업으로 그룹을 재편하라”고 강요했어야 한다.

버핏은 ‘총수 일인 지배체제’ ‘세습 경영’과 같이 국내 재벌을 비판할 때면 단골로 나오는 행태도 거침없이 보인다. 버핏을 보좌하는 전문경영인은 극소수다. 오마하 본사에 근무하는 인원은 25명에 불과하다. 본사에 인사 담당 부서도 따로 없다. 버크셔의 경영은 버핏의 ‘원맨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버크셔는 세계적 기업 중에서 회사 이름보다 최고 경영자의 이름이 훨씬 더 유명한 거의 유일한 회사다. 게다가 버크셔의 대권은 첫째 아들 하워드 버핏에게 넘어간다. 버핏은 올해 나이 83세. 버크셔의 2인자 찰리 뭉거는 90세다. 그나마도 버핏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나 아들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하워드 버핏은 지금 59세다.

하워드 버핏은 그동안 변변한 경영활동을 한 것이 없다. 대학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농장을 경영하고 보안관 자원봉사를 했다. 버크셔·코카콜라 등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것 이외에는 경영능력을 내세울 게 없다. 그래서 최고경영자(CEO) 직책은 맡지 않고 회장직만 맡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상징적인 회장은 절대 아니다. 그의 임무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문화와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여기에는 “미래의 CEO가 버크셔를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면서 ‘개인의 꿀단지’로 만드는 일을 막는 한편 경영자들의 독립적이고 솔직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권한으로 하워드 버핏은 경영에 얼마든지 간여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 회장들도 과거엔 계열사들의 CEO직은 맡지 않으면서 경영을 좌우했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너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행사한다고 비판 받으면서 계열사 CEO직을 맡게 됐다. 하워드 버핏이 실제로 하게 될 역할은 재벌 개혁 이전 한국 오너 회장들이 하던 일과 비슷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버핏이나 버크셔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회사를 어떻게 감히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버핏식 경영이 교과서에 나오는 경영방식보다 더 효율적이고, 따라서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은 처음부터 방향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전문 경영체제의 본산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가족경영 기업들이 전문경영 기업들보다 매출액 증가율이나 이익 증가율에서 더 좋은 성과를 올려 왔다. 영국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다. 개발도상국 기업들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가족경영 기업들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경영을 하는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賢人)’이라고 존경하고 한국 재벌 기업인들은 전근대적 사업가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많다.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많이 떨어졌다. 경제 기적의 나라가 저성장으로 신음하고 있다. 기업 경영 방식에 관한 사대주의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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