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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추돌 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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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제 휴일에 특급열차가 역구내에서 완행열차와 충돌, 18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의 중경상자를 낸 대형참사가 빚어졌다.
이번 사고는 흔히 발생했던 건널목사고와는 달리 사고현장이 특급열차가 정차하게 돼있지 않은 간이역에서 시속1백㎞로 달리는 특급열차 전방에 완행열차가 진로를 가로막고 있으므로 해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열차운행체계 전반에 걸쳐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중태에 빠진 특급열차기관사의 회복과 당국의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량수송수단으로서의 철도운영실태와 안전대책에 대한 신뢰도를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철도는 말할 것도 없이 방대한 시설과 장비를 보유하고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수송하는 나라의 동맥으로서 연간 수송량만도 여객 2억6천9백만명과 화물 4천8백만t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철도의 역할에 비해 우리나라 철도의 시설관리나 안전대책은 언제나 위태로운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는 사고가 날 때는 물론, 평소에도 한결같이 느껴오던 것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줄 안다. 철도사고의 원인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물적 요인, 즉 시설상태만 해도 그렇다.
우선 총연장 5천6백52·5㎞의 궤도 상당부분이 열차의 고속화 및 기관차의 대형화에 따른 부담을 감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행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궤도부담이 늘어남에 따라 종래의 경량「레일」은 모두 중량급으로 대체돼야 하는데도 대체를 필요로 하는 3천3백㎞ 중 65%인 2천1백32만㎞만이 대체가 이루어졌을 뿐이며 침목도 총부설수 8백71만4천8백94개 가운데 65만4천2백23개가 노후돼 열차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고있다.
철로에 까는 자갈도 그 표준량은 7백만7천7백24입방m이나, 12%에 이르는 8백60만9천3백33입방m가 부족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같은 노선시설 불비로 연간 탈선사고만도 평균 16건씩이나 발생, 1천만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차량관리도 마찬가지다. 7백70대에 이르는 각종 기관차 가운데 내용연수를 넘긴 것이 10%에 이르고, 객·화차도 12% 가까운 숫자가 수명을 다한 고물차로 운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철도사고로 인한 막대한 인명의 희생과 재산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이처럼 노후한 시설개선과 함께 장비의 현대화와 자동화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안전운행을 위한 열차집중제어장치(CTC)는 전국적으로 고작 2개소뿐이며 열차자동정지장치(ATS)는 10개구간, 자동폐쇄신호장치(ABS)는 5개선만 설치돼 있어, 장비의 현대화는 한마디로 명목에 그치고 있다.
여기다 철도당국은 그간 경영합리와를 구실로 경험 많은 고참 기능직인원을 계속 감축해왔으며 앞으로도 3년간에 걸쳐 다시 약1천6백명을 줄일 방침이라 한다.
인원감축은 필연적으로 근무시간의 연장과 대기(휴식)시간의 단축을 초래함으로써 기관사 등의 과로운행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현재도 기관사들은 평균 12시간, 격일 교대근무시 24시간을 계속 근무하고있는 것을 감안할 때 계속근무로 인한 능률저하가 사고와 직결될 지 모른다는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철도청 당국이 추진중인 경영합리화방안이 적자보전에만 급급한 나머지 만에 하나라도 열차운행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서는 안될 것이다.
공기업으로서의 철도운영은 무엇보다 안전도를 최대의 우선순위로 하고 구체적으로는 궤도의 이용률 향상과 현대기술의 도입으로 경영합리화를 기해 나가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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