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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슬픔 알기에 … 진도 찾은 탈북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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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그 역시 아들 둘을 잃었다고 했다. 북한 금강산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였다. 사고 당시 큰아들은 스무 살, 작은아들은 열여덟 살로 둘 다 군 복무 중이었다. 터널을 뚫다가 산이 무너졌다. 사망 소식은 7개월 후 전해 들었다. 시신은 볼 수 없었다. “잘 처리했으니 걱정 말라”는 말뿐이었다. 9일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온 탈북자 하정옥(66·여)씨 얘기다.

 하씨 등 탈북자 11명이 9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만든 탈북자 봉사모임 ‘새삶’ 회원들이다. 이혜경(49·여) 대표는 “지난 6일 회원들이 서울시청 분향소를 찾았다가 봉사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와서 국가와 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며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때”라고 덧붙였다.

 진도에 온 새삶 회원 중 상당수는 하씨처럼 자녀나 가족을 잃었다. 김경애(69·여)씨도 그렇다. 함경북도 혜산에 살다가 1996년 어떻게든 식량을 구하려고 중국에 들어갔다. 그 뒤 쫓기는 신세가 됐다. 산에서 숨어 살기도 하다가 2006년 한국에 왔다. 이듬해 3남매 중 큰딸을 빼고 작은딸과 아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김씨는 “아직까지 진도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하루빨리 아이들을 찾기 바란다”고 하더니 아들딸 생각이 떠오른 듯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새삶 회원들은 이날 신분을 밝히지 않고 묵묵히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매트를 닦고, 쓰레기를 치웠다. 실종자 가족들에겐 말을 붙이지 않았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더 슬픔을 북받치게 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토요일인 10일까지 진도에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이날 민·관·군 합동구조단은 구조·수색 활동을 이어갔으나 오후 늦게까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랫동안 물에 불어 약해진 벽들 중 일부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활동에 애로를 겪었다. 9일 오후 9시 현재 희생자는 273명, 실종자는 31명이다. 물살이 약한 소조기는 10일로 끝난다. 구조단은 소조기가 끝난 뒤에도 구조·수색을 계속할 방침이다.

진도=권철암·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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