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 살린 쓰나미 교육의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전. 왼쪽으로 기울던 세월호 갑판 위에 힘겹게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던 탑승객 김모(53)씨는 선실 창문 너머 광경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수십 명이 배가 크게 기울었는데도 탈출하지 않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 차분히 모여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때문에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외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여객선이 위험하게 기우는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국가재난관리학회 수석부회장인 이명선 이화여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7일 “선박 사고 대피요령을 체계적으로 배운 프랑스나 미국 학생들이었다면 당연히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외국에선 선실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면 물이 들어왔을 때 부력 때문에 문을 열기 어렵다는 점을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한민국과 프랑스·미국 학생들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다.

 이 교수는 “단원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장면은 잘못된 안내 방송 탓이 크지만 평소 우리 학교와 사회에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잘못도 그대로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안전교육 미비로 인한 장면은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승객들은 연기가 차오르는 것을 보고도 기다리는 방송 때문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하철 화재 대피 훈련을 받았다면 자세를 낮추고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뒤 신속히 객차를 빠져나가 비상구로 향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은 재난이 빈발하지만 안전교육이 뿌리내린 덕분에 생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쓰나미가 덮쳤을 당시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釜石)시에서 1200명이 희생됐지만 초·중학생은 99.8%가 목숨을 건졌다. 전체 학생 2924명 중 희생자는 5명뿐이었다. 시 교육위원회가 만든 ‘쓰나미 방재 교육을 위한 안내서’가 기적을 만들었다. 안내서에 따라 국어시간에 ‘해일이 온다면’이란 주제의 글짓기를 했다. 수학 방정식을 배울 때는 쓰나미가 육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하는 문제를 출제해 수업과 재난 대비를 연계시켰다.

 자전거 열풍 와중에 국내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다르다.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한 독일인(27)은 “독일에선 한국의 자동차운전학원과 비슷한 곳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 ”고 소개했다. 초등학생은 면허증이 없으면 혼자 자전거를 탈 수도 없다고 한다.

 수영은 독일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 과목이다. 일본에서도 수영은 중학교까지 필수과목이고 교육 목표는 생존에 맞춰져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지영(38·서울 서초구)씨는 “수영학원 다니는 데 월 15만원이 든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생존을 위한 수영도 배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명선 교수는 “프랑스·영국처럼 안전 교육을 독립 교과로 만들어 가르치고 학교가 소방서·경찰서 등 외부 전문가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하자”고 제안했다.

◆구조자 수정 발표=해경은 7일 구조자 수를 174명에서 172명으로 2명 줄여 발표했다. 하지만 실종자와 탑승자 수는 아직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실종자가 33명에서 35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으나 이들은 이미 희생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김성탁·박현영·정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