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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간 머문 경로 새로 확인…아산은 성웅의 시작·끝이 있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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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에는 왕실온천으로 유명했던 온양온천과 현충사를 비롯해 민초들의 바람이 담긴 미륵과 옛 나루터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화요소가 많다. 현재는 친환경 농업과 첨단산업이 함께하는 도·농 복합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향토사학자인 천경석 온양고 교사의 ‘아산 이야기’를 통해 아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다. 첫 회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이다.

현충사 안에 있는 고택(위쪽 사진)은 이순신 장군이 결혼 후 살던 곳으로 백의 종군 길에 보름간 머무른 곳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순신 장군이 고택에 머무르던 중 어머니 유해를 맞이한 게바위 나루.

이순신(李舜臣·1545~98) 장군은 서울 건천동(현 인현동)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외가가 있는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에서 살았다. 그 때문에 아산엔 생가와 사당(현충사) 같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많다. 아산시는 매년 ‘성웅 이순신 축제’을 개최해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1592~98) 당시 해전에서 연승을 거두지만 1597년 모함을 당해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게 된다. 그해 4월 3일(이하 음력) 서울을 떠나 6월 3일 경남 합천 초계에 있는 도원수부까지 걸어가는 백의종군 길을 남기게 된다.

아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충남에서는 경남과 전남 지역에 비해 이순신 백의종군 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상태다. 그러나 지역 연구가나 아산백의종군보존회(회장 박승운) 등 일부 뜻있는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자발적으로 이순신 백의종군 길의 경로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순신 선양회’ 발족하고 연구 착수

아산백의종군보존회는 지난해 아산시 배방면 수철리 넙티 고갯마루 근처에 백의종군 길 표지석(오른쪽 사진)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산 지역 주민들로 ‘이순신 선양회’가 발족됐다. 필자도 몇 년 전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해왔다. 지난달 22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이순신의 백의종군 정신’이란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그동안 연구해 온 아산시 지역 이순신 백의종군 길의 경로와 관련 유적지가 고증을 거쳐 발표되기도 했다.

1597년 4월 5일에 들어와 4월 19일 떠날 때까지의 아산시 지역 이순신 백의종군 길 경로는 다음과 같은 세 구간으로 나눠 정리할 수 있다. 들어온 길은 평택현(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운용리 접점~둔포면 운교2리 벼락바위~봉재리~음봉면 산정리 요로원~어르목 고개~삼거리 선영(현 충무공 묘소 지역)~음봉면 동천1리 뒷내~동천2리 시곡~염치읍 방현리 갈월·쇠일~송곡리 속골~백암리 본가(현 고택)에 이르는 경로다.

그런데 이순신이 아산 고향에 머무르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여수에 살던 어머니는 아들 이순신을 만나기 위해 서해안 뱃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배 위에서 사망했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유해를 해암리 게바위 나루에서 맞이하게 된다. 그곳까지의 경로가 염치읍 백암리~음봉면 동천2리~염치읍 염성리~중방리~인주면 해암리 구간이다. 이순신은 게바위 나루에서 사흘간 머무르며 유해를 입관했다. 그 뒤 배로 곡교천을 거슬러 중방리 중방포까지 온 뒤 상여로 백암리 본가에 와 빈소를 차렸다.

충·효·구국의 의미가 담긴 백의종군 길

아산에서 나간 길은 비교적 단순했다. 장례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어머니 영전에 눈물로 하직한 뒤 남행길에 오른 이순신은 백암리 본가~온양 신동·남동~배방읍 신흥리~수철리 넙티(고개)를 마지막으로 아산을 뒤로 한 채 천안시 광덕면 보산원에 다다르게 된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위해 아산에서 머물렀던 보름 동안이 결과적으로 그가 생전에 고향에 머무른 마지막이 됐다.

그가 아산을 떠나 신흥리과 넙티를 거쳐 내려간 남행길은 1년8개월이 지나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뒤 유해가 돼 수레에 실려 본가로 되돌아온 길이 되기도 했다. 아산시는 인간 이순신, 성웅 이순신의 시작과 끝이 있는 곳이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엔 충의 길, 효의 길, 고뇌의 길, 통곡의 길, 신념의 길, 구국의 길, 영생의 길 등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 이순신은 백의종군 길에 올라 고뇌와 통한,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오직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애국애민 정신으로 이를 극복했다. 우리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정신을 되새기며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이제 아산 지역의 백의종군 길을 차분히 되살리면 매우 뜻 깊은 순례길이 될 것이다.

◆백의종군=과거에 급제한 무관에게 적용했던 형벌로, ‘관직과 보직이 없는 상태로 군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평생 두 차례 백의종군을 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임진왜란 때인 1597년의 2차 백의종군이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면서 평복을 입기는 했지만 현직과 거의 다름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예우를 받으며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천경석 교사
196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강원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34년간 고교 역사교사로 재임하면서 20여 년간 아산 지역에서 근무한 향토사학자다. 현재 온앙고에 재직 중이다. 순천향대 부설 아산학연구소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지방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아산 인물록』 『아산의 입향조』 『종곡리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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