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유차 확대 전에 오염대책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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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의 공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나쁘다는 자료가 나왔다.

매일 뿌연 하늘과 탁한 공기를 접하며 살아온 시민들이지만 그 정도가 대기 오염으로 악명 높은 로마나 멕시코시티보다 더 심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런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뭘 했는지 한심하고, 이러다 시민들이 마음놓고 외출도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서울의 대기 오염 지표는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미세먼지가 도쿄.뉴욕.파리 등에 비해 1.8~3배에 이르고, 기관지염과 폐렴 등을 유발하는 이산화질소 농도도 선진국에 비해 1.7배 수준이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가 해마다 1만명에 이르는 등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 비용이 연간 8조원을 넘는다는 통계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대기 오염이 날로 악화되는 것은 여러 원인을 꼽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오염원은 자동차 배출가스이고 그중에서도 경유차가 주범이다.

대기 오염원 가운데 배출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5%에 달하고, 전체 차량의 29%를 점유하는 경유차가 내뿜는 오염물질이 전체의 52%를 차지한다.

사정이 이런 데도 최근 정부는 경유 승용차 시판과 관련해 반(反)환경적 정책을 결정했다.

국제 사회의 현실을 무시한 기준을 바꿔 2005년부터 경유 승용차 시판을 허용키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대기 오염을 막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 두루뭉수리로 넘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휘발유 값의 58% 수준인 경유 값을 적정 수준으로 높이지 않을 경우 경유차 구입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매연 저감장치(DPF) 나 탈황 시설 등 국내 기술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경유 승용차 시판은 대기오염 악화를 부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환경단체들은 경유차 문제를 비롯한 최근 정부의 환경정책이 경제논리에 밀리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환경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국민 건강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