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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사회 방어 위해 가장 엄격한 자세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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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의 종국적인 사명은 법을 제대로 적용해서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났다. 양 대법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최근 법원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어서다. 광주고법의 ‘일당 5억원 노역’ 판결에 이어 울산·칠곡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판결을 놓고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법원의 법 논리와 국민의 법 감정이 엇갈리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재판이란 무엇이고, 판사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2011년 9월 취임과 함께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 국민이 신뢰하는 재판’을 강조해 온 양 대법원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먼저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해 물었다.

-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났는데.

 “참으로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심정이다. 더구나 그 사고가 어처구니없는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더없이 실망스럽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이번 참사를 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의 기둥이 되는 규범이 문제 될 때는 우리의 권한 내에서 가장 엄격한 자세로, 엄정한 규범을 세울 각오로 임해야 될 것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규범 문제다. 사회를 위협 요소로부터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사회 방어를 위한 사법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차원에서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 법과 재판이란 무엇인가.

 “법이라는 것은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자고 동의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져야 목표했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재판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승복해야 한다. 만약 승복하지 않고 끝없이 다툰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

 - ‘일당 5억원’ 판결이 논란을 빚었는데.

 “당시 지역사회에서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여론의 압력이 강했던 것으로 들었다. 검찰 구형도 선고유예였다. 그렇게 선처할 수는 없고 벌금을 내야 할 것 아니냐고 압력을 거부한 것이 재판부의 의도였던 것 같다. 문제는 환형유치기간이 50일 정도에 그치면서 1일 5억원이란 금액이 나온 데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된다는 점, 충분히 이해가 된다.”

 - 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는가.

 “재판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사건 하나를 적절히 해결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재판의 결과가 다른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 사회의 규범 형성과 사법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두 고민해서 바른 결론을 내야 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법의 공평성에 치명적 상처를 준 점을 아프게 생각한다.”

 - 법원에 대한 불신이 작지 않다.

 “법원 안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고, 법원 바깥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국민들의 법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반면 법관들의 법 인식은 더디게 변하고 있다. 그 인식 간의 괴리에 따른 실망감이 특히 형사재판 부분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지 않나 싶다. 법의 적용 기준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관 중심의 일방적 사고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 아동 학대 같은 사건을 보면 판사들도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국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접하지 않나. 재판에서는 미디어에 드러나지 않은 사유들도 드러나고, 언론에 보도됐지만 법정에는 제출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재판을 직접 해보면 바깥에서 보는 시각과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된다. 판사들이 고민을 많이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내는 평결을 보면 법관의 양형(형량 결정)보다 낮은 경우가 더 많다.”

 - 양형에 판사들이 최선을 다한다고 보나.

 “판사들의 양형 감각도 사회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지만 그 속도가 좀 늦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도 문제가 있다. 법적 안정성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법관의 양형 감각이 과거의 전통적 기준을 따라가기만 해서 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가 잘살지 못할 때는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범죄들이 많았다. 지금은 소득이 높아졌고 가치관도 판이하게 달라지지 않았나. 그때와 똑같은 사고를 유지할 순 없다. 사법의 종국적인 사명은 법을 제대로 적용해서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너그럽게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 적지 않은 이들은 판사들이 인맥과 돈,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고 의심한다.

 “법원이라는 조직이 금력·인맥·권력 같은 데 휘둘리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니다.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중요 사건 재판에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이 지침을 줬을 것이라고 선입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임 후 소통이란 기치를 내걸고 ‘국민들께서 법원에 들어와 우리 것을 다 보게 하자. 우리 스스로를 다 내보이자’고 한 것이다.”

 - 법원의 소통이 왜 중요한가.

 “판사는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불신은 상호간의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앉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민들이 신뢰하게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소통만 한다고 의심이 해소될 수 있나.

 “소통은 ‘자, 나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으니까 들어와 보시오’ 하는 것이다. 그 전에 나 스스로 아무 거리낄 것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소통의 전제다.”

 - 판사들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판사들이 사건에 매몰돼 있을 때는 다른 측면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성실히 일한다는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충고에 반발할 수도 있다. 사법 신뢰의 중요성에 관한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고, 이 점에서 외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 듣기 싫은 얘기하면 판사들이 싫어할 텐데.

 “자칫하면 인기 없는 대법원장이 되겠다고 탄식하고 있다(웃음). 그래도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리 법관들이 공감한다. 모든 법관들 속에 일단 그런 인식이 자리잡으면 변화는 빨리 올 것이다.”

 - 정치적 사건 판결 때마다 논란이 이는데.

 “법리에 따라 재판을 했는데 결과가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나오면 자세한 분석 없이 무조건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판결도 정당한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진영 논리에 의해 손가락질하는 건 문제다. 설사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한 판결이 있다고 해도 상급심에서 바로잡아진다.”

 -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사건으로 논란이 많았다.

 “한쪽에선 유죄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무죄라고 주장하는데 판사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 판사의 판단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판결에 승복하지 않으면 그건 사법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 지난달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국민의 신뢰와 상식을 강조했는데.

 “헌법이 재판 독립 원칙을 명시한 것은 판사가 사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것이란 신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당연히 그런 신뢰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판사의 양심도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보편적인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재판 독립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내 고집대로만 하면 된다’가 아니다. 그렇게 판결하면 그야말로 튀는 판결이다.”

 - 판사들의 막말 시비도 많았다.

 “우선 국민에게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마음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반성한다. 최근 구술주의가 강화되면서 들을 기회도, 말할 기회도 많아졌는데 그런 부분에 관해 법관들의 경험과 훈련이 부족했다.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 판사들이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점은.

 “반성이라기보다는 바쁜 업무 중에서 그간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의 신뢰가 우리 권한의 기본 원천이라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인식을 가질 때 모든 면에서 달라지게 될 것이다.”

 -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보나.

 “정말 진정성이 드러나야 한다. 좀 더 노력해야 한다.”

 - 법원의 법 논리와 국민의 법 감정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의 큰 물결 같은 지속적인 법 감정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일시적 여론에는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강조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 대법원이 보수화된다는 시각도 있는데.

 “그 취지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비판의 뜻이라면 납득하기 어렵다. 취임 당시 내가 소통이란 말을 꺼낼 때만 해도 소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화두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가고, 불러들이고, 설득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틀을 깨자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퇴임하고 그 뒤를 이을 대법관이 없다는 측면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도 전원합의에 들어가면 보수와 진보, 시각의 갈림이 있는 사안에서 대법관들 간에 견해가 많이 다르고 격론 끝에 큰 소리도 난다.”

 - 사법제도 중 개혁이 시급한 것은.

 “우리 국민들에겐 재판은 세 번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이 있다. 또 무조건 이길 때까지 상소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다. 그러나 여러 선진국의 예에 비추어 보면 재판은 한 번 하는 것이 원칙이고, 항소는 재판에 큰 잘못이 있을 때 특별히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상고심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1심을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글=권석천 논설위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

경남고·서울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2기, 서울민사지법 판사(1975년 임용), 제주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사법정책연구실장, 서울중앙지법 초대 파산부 수석부장,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장, 대법관(2005~2011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2009~2011년)

인터뷰 후기
2005년 오토바이 면허 … 대법관 되며 운전 꿈 접어

“자신을 절제하고 감정을 누르며 살아온 것 같다.”

 양승태 대법원장 인터뷰 사진을 촬영한 권혁재 기자의 말이다. 두 시간 동안 400여 차례 셔터를 누른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양반들을 보면 인터뷰할 때 손동작이 크다. 그만큼 거침이 없는 거다. 양 대법원장은 동작이 작은 데다 손이 항상 가슴 아래에 머무르고 있다.”

 양 대법원장에게 판사 생활의 원칙을 물었을 때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늘 긴장해야 하는 것 같다. 경계와 절제의 생활이었다. 누가 다가오면 이 사람이 왜 내게 접근하는지 겁내야 하고… 구속받고 제약받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공간은 산이다. 2005년 대법관에 임명되기 직전엔 오토바이 면허를 땄다고 한다. 판사 생활이 끝나면 오토바이를 탈 계획이었는데 대법관이 되면서 꿈이 무산됐다. 그는 “대법관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고개를 흔들더라”며 “대법관 퇴임하고 대법원장이 될 때까지 6개월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판사의 삶도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