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안전불감증 넘어 '고도 위험사회'로 가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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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사회의 안전 상황을 ‘안전불감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이젠 안전불감증의 적폐(積弊)가 도를 넘어 ‘안전’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무감각이 지배하는 사회, ‘고도(高度) 위험사회’의 징후를 드러낸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사회가 안전을 부르짖는 와중에 서울 한복판 지하철에선 추돌 사고로 240여 명이나 다쳤다. 그야말로 후행 기관사의 기민한 대응으로 사망자가 없는 게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큰 사고였다. 그런가 하면 대구 케이블카는 네 차례나 급발진 사고를 반복하면서도 배짱 운행을 하다 10여 명이 다친 뒤에야 운행을 멈췄고, 거제 유람선은 140여 명을 태우고 가다 기관 고장을 일으켰고, 390여 명을 태운 독도 여객선도 뱃길 중간에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서울지방경찰청 열차사고수사본부가 발표한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2일 발생) 중간수사 결과 내용은 어이없는 수준이다. 발표에 따르면, 사고 당일 서울메트로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모니터상으로 신호 오류가 난 것을 확인했단다. 그런데 ‘통상적 오류’라고 생각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사고 열차의 앞 열차는 사고 직전 문이 정상적으로 닫기지 않아 스크린도어를 세 차례나 여닫느라 1분30여 초간 운행이 지연됐지만 이를 종합관제소에 보고하지 않았다. 통상 전동차가 한 곳에 40초 이상 머물면 보고해야 한다는 지침을 무시한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안전 상황이 ‘통상적’으로 무시되었을까. 이에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는 “나흘 전부터 신호체계가 고장났다”고 발표했지만, 실은 지하철 신호 및 강제제동제어시스템(ATS) 오류는 최대 8년 전부터 지속된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나흘 전에 상왕십리역에서 고장이 났을 뿐, 이미 전 구간에서 비슷한 사고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관사들이 아예 ATS를 끄고 운행하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게다가 한 전동차에 차량 연식도 제각각이고, 표준도 일본·독일·한국식이 뒤섞이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까지 뒤범벅돼 통합운용이 어렵고 오류가 자주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예산 절감 차원에서 지하철 안전 예산을 최근 대폭 삭감해 가뜩이나 노후한 지하철의 안전운행은 애당초 담보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 서울메트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안전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월호의 그 많은 어린 학생의 희생에서조차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지 슬프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문화에만 핑계 대기엔 우리 사회 위험의 정도가 너무 높다. 한발 내디디기조차 불안한 지경이다. 이젠 개혁적으로 안전시스템을 보강하고, 안전사범은 엄격한 처벌로 응징하는 등 전 사회가 ‘안전 사회’로 급선회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