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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꿈보다 실리 대학생의 희망직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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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방금 이발소에서 나온 듯한 단정한 머리에, 방금 양복점에서 나온 듯한 눈부신 복장에, 방금 구둣가게에서 나온 듯한 틀 잡힌 구두에, 방금 「파리」를 끝내고 나온 듯한 「넥타이」와 「와이셔츠」에… 그리고 007 가방을 들고 「유럽」의 어느 도시를 활보하는 청년.
필경 이것은 오늘의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자신의 미래상, 아니 바로 한 두 해 뒤의 모습일 것도 같다. 「세일즈맨」을 가두의 약장사쯤으로 생각하던 통념은 이제 젊은이들의 세계에서는 씻은듯이 찾아 볼 수 없다.
몇 년 사이에 급속히 성장한 무역업은 새 세대의 직업 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우선 배우자의 이상 상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에서도 엿 보인다.서울시내 S여고3년 생의 한「앙케트」에서 무려 63%의 여학생들은 바로 외교관과 무역회사「세일즈맨」을 장래의 배우자로 선망하고 있었다. 여자대학생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무드」는 한결같다. 한 때 이들은 아담한 「화이트·칼러」, 이를테면 은행원을 선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속은 바뀌었다.
인기 있는 직장이란 바로 이 같은 과정 속에서 학생사회에 널리 전파된다. 가령 『이 회사는 월급 등 대우는 좋지만 일요일은 물론 평일도 밤 10시까지 근무해야되기 때문에 월급이 적은 회사보다 좋을 게 없다 더라』 『저 회사는 오랜 전통으로 안정돼있기도 하지만 퇴직할 때는 버린 자식 취급하듯 퇴직금이 적다 더라』 『그 회사는 사주가 벼락부자일 뿐만 아니라 무식해서 부하직원이 괴롭다 더라』 등 기업「이미지」와 관련되는 각종 풍문이 학생사회에 퍼지면서 인기직업·직장의 순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여자대학의 조사결과라는 특성은 있지만 이대졸업생을 대상으로 직장선택요인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응답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37%) 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다음이 분위기가 좋은 곳(18%),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는 곳(10%), 월급이 많은 곳7%)등의 순이다. 서울대 이현재 교수(경제학)는 남자대학의 경우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학생들에게 우선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경제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월급 많은 직장」과 「분위기 좋은 직장」의 인기척도가 남자의 경우 뒤바뀔 것이라는 분석.
이 같은 분위기·조건 등이 작용한 탓인지 금년도 인문·사회 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분야는 단연 무역업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연대· 고대·성대 등의 학생과 취업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상계통의 약 30%가 무역업계에 진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성대학생과에서 5년 째 직업보도를 담당해 오는 문충남씨의 얘기. 『처음 이 업무를 맡았을 때는 대기업에서 모집광고가 나면 입사원서를 특별히 부탁, 더 얻어오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중소기업이라도 무역회사만 찾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취업경향이나 한국경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요.』
문씨가 알고 있는 박모씨(30)의 경우 그는 당초 종합무역상사에서 해외 「세일즈」를 맡는 것이 꿈이었으나 대학졸업 후 72년 큰 회사에 처음 입사, 해외「세일즈」와는 거리가 먼 복잡한 업무가 맡겨지자 자진퇴사, 부산까지 내려가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실무를 익힌 후 지금은 비슷한 친구 4명이서 자본금 1천만 원으로 J「오퍼」상을 경영하면서 작년에만 2백만 「달러」의 잉말을 수출했다.
은행을 찾는 것도 몇 년 전 얘기. 졸업생의 10%가 같은 금융기관이라도 수입에서 2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증권·투자신탁회사를 찾는다고 문씨는 지적했다.
무역업과 함께 선두를 다투는 곳이 중동 「붐」을 반영하듯 해외건설업과 석유가 주축이 되는 중화학공업분야다. 특히 해외건설업은 건축과·전기 과 학생의 대부분이 해외근무라는 매력과 현지수당 등 임금이 높기 때문에 모집광고만 내면 20대1 정도의 경쟁 율을 보인다는 것이 H건설 인사 부의 귀띔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언어소통이 생명이기 때문에 어문학계통졸업생의 건설업진출이 뚜렷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외대 「아랍」어 과 출신의 유모씨(H건설 근무)에 따르면 중동지역 동문끼리 현지에서 동창회를 만들어도 충분하다는 것.
이공계통은 전공의 특색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붐」을 이루는 분야는 없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배운 전공을 살릴 수 있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라면 기업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취업하는 것이 새로운 경향이라고 김정흠 교수(물리학·고대)는 지적했다. 다만 「컴퓨터」관계회사 등 최신 실비를 갖춘 회사에 특히 많은 학생이 몰린다고 한다.
한편 예술계통 중 미술이 최근「붐」을 이루고 있는 상업·공업「디자인」이 최고 인기분야라는 권순형 교수(서울대·응용미술과) 의 귀띰. 이밖에 많은 학생들이 광고대행회사·대기업의 홍보계통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임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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