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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③ 솔잣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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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잣새, 솔잣새. 여기는 솔잣새 3호, 관내 이상 없습니다.”

경남 함안군청 산불감시원 이무웅(70)씨의 무전입니다. 그에게 솔잣새는 암호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난겨울 이 암호는 살아 있는 새가 되어 날아들었습니다.

되샛과의 솔잣새는 보기 드문 겨울철새입니다. 침엽수의 구과(毬果)를 빼먹는 데 최적화된 기묘한 부리가 특징입니다. 『핀치의 부리』에 소개된 전설 한 토막. 솔잣새의 휜 부리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대못을 빼다가 입은 상처이고, 수컷의 가슴이 붉은 건 예수의 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부리는 전설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에도 이름을 남깁니다.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한 다윈은 되샛과의 부리에 주목합니다. 먹이와 생활조건에 따라 16가지 형태로 분화된 부리를 관찰한 그는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합니다. 학자들은 진화론의 힌트가 된 이 새를 ‘다윈의 핀치’라 부릅니다. 이런 풍부한 이야기를 간직한 새가 출현한 것이죠.

좋은 인연은 결국 사람 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이곳으로 솔잣새를 이끈 건 무전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따뜻한 배려 덕이지요. 적막강산 홀로 산불을 감시하는 이씨에게 목마른 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이 한낮의 햇볕에 녹아들 무렵, 새들이 날아와 몇 방울 물을 찍어 먹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지요. 다음 날부터 그는 물통을 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겨우내 이름 모를 새들이 그의 곁을 찾았고, 솔잣새도 단골 명단에 올랐습니다. 우리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겐 기적 같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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