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개혁, 관료에게 맡기면 무력화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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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동시에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고질적 병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형 참사를 초래한 부실한 안전점검과 무능한 사고 대응의 배후에는 관피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관료사회 개혁은 말뿐이었고 근본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개혁 대상인 관료에게 개혁을 맡겨 온 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박경원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료들은 개혁에 내성이 강하고 웬만한 개혁을 쉽게 무력화한다”며 “관피아 구조를 깨려면 대통령이 직접 공무원 채용·평가·재취업까지 인사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역대 정부가 공무원 인사 시스템을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1999년 민간 경력자 등을 수시로 채용하는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부처 내부 공무원을 개방직에 채용한 비율이 2011년 54.4%에서 2013년 59%로 오히려 늘었다. 1~3급 고위공무원을 정부 공통으로 활용하자는 고위공무원단(고공단)제도는 보직순환 사례가 적어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일반화된 다면평가제는 98년 시작했지만 “노조에 휘둘린다”는 공직사회 내부 반발에 밀려 2010년 사실상 폐지됐다.

 전문가들은 행정고시 제도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법고시는 2009년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2017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외무고시도 지난해 국립외교원을 통한 선발로 바뀌었지만 행정고시는 5급 공채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필요한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직무별로 공무원을 수시로 공개 채용한다.

 싱가포르는 모든 공무원을 개방형으로 뽑아 고위공무원 승진 예정자는 민간 기업 간부로 일정 기간 일하도록 한다. 황성원 군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고시로 뽑는 일본에서도 하급 공무원으로 임용해 실무를 밑바닥부터 배우게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에서 마케팅·인사·생산 직군을 따로 뽑듯 공무원도 직무를 세분화해 선발하자”고 제안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관료의 부족한 문제 해결 역량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공무원 선발 때 다층면접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공직자 윤리의식과 서비스 정신을 갖췄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계급제로 운영되는 현행 공무원 제도를 성과·능력에 따라 보수·직위를 결정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 교수는 “과장·국장·실장이란 계급 중심으로 평가하지 말고 업무 특성과 난이도에 따라 직무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보수체계도 무사안일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1~4급 이상은 성과연봉제, 5급 이하 공무원은 호봉제를 적용한다. 황 교수는 “성과가 가장 높은 S등급(상위 20%)과 가장 낮은 C등급(하위 10%)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 다”며 “S등급의 성과 상여금 지급액을 대폭 높이고 C등급 비율을 늘려 보수 격차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기환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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