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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선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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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밤 9시. 소나기가 그친 것처럼 전 미국은 잠잠해졌다. 백인도, 흑인도 아니 모든 미국 사람들은 이 시간만 되면 숨소리를 죽이고 TV 앞으로 다가왔다. ABC, TV의 연속「드라마」 『뿌리』(Roots)를 보려는 사람들이다.
근 착「타임」지에 따르면 전 미국인의 반수도 넘는 1억3천만 명이 이 TV를 지켜보았다. 밤 11시까지 8일 동안 꼬박 사람들은 이 TV「드라마」에 사로잡혔다.
작자는 초로의 경지에 접어든 흑인「앨릭스·헤일리」(55세). 미국인들은「헤일리」가 몰고 온「뿌리선풍」을 차라리『「헤일리」혜성』이라고 부를 정도다. 어떤 사람은 이「프로」에 너무도 충격을 받아 울고 몸부림치고, 잠을 설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에 발간된 이 소설은 이미 14판을 기록했으며 오는 3월 1일이면 1백만 부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정가는 12달러50센트. 매상고는 무려 1천2백만 달러를 기록하는 셈이다.
오는 10월 문고판이 나오면 그 부수는「마거리트·미첼」여사의 소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미첼」의 책은 1936년 초판이래 2천1백만 부를 기록한 미국 출판 사상 최고 부수의 소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호「월간중앙」부록으로 번역, 소개된 일이 있음).
이 소설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미국흑인의 수난사를 엮은 것이다. 17세기말과 18세기초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미 대륙의 인종시장에서 파는 얘기, 백인들에 의한 잔인한 학대 등. 작가「헤일리」는 상상의 세계에서가 아니고 그와 같은 사실들을 12년 동안의 집요한「르포르타지」에 의해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바로 그 자신의 선조인「쿤타·킨테」의 정체를 모든 증언과 전적들의 취재에 의해 밝혀 낸 것이다. 그것은「킨테」선조의 7대에 걸친 내력을 추적하고 있다. 어떤 대목에서는 백인이 흑인의 발등을 도끼로 찍는 충격적인 장면까지도 등장한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 소설이 왜 그처럼 인기를 모으고 있는가 이다. 그것은 미국인 자신들도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칼럼니스트」인「래스베리」같은 사람도『「루이·암스트롱」의「재즈」가 어째서 인기가 있었는지』와 같은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단절감 속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그것은 놀라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정체가 무엇이며, 선조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일상의 많은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지낸다. 바로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정체를 밝혀 준 것이라고 「헤일리」는 말한다.
「단절의 세대」-. 그것은 어쩌면 현대인 누구 나의 경우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신학자들이 정체(identity)의 신학을 설파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자기」를 잃고 사는 사람들처럼 무위한 경우는 없다. 『뿌리』는 멍청한 현대인들에게 찬물을 끼얹어 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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