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부실의 뿌리, 관피아 카르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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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관료 마피아), 그들의 힘은 수십 년간 촘촘하게 만들어진 피라미드 구조의 먹이사슬에서 나온다. 역대 정권마다 공직사회 개혁을 외쳤음에도 관피아 카르텔이 해체되지 못한 이유다. 피라미드의 정점엔 힘센 정부부처의 고위 관료가 있다. 이들은 퇴직과 동시에 공공기관장·민간협회장을 맡아 불패의 권력을 누린다.

 관피아 먹이사슬 말단촉수는 각 정부부처의 관리·감독을 받는 각종 협회까지 뻗쳐 있다. 부실 감독으로 세월호 침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난 해피아(해수부 마피아)가 전형적이다. 해운조합·한국선급 같은 해수부 산하기관 14곳 중 11곳을 해피아가 장악하고 있다. 해운사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 안전운항 지도·감독권을 맡긴 게 대표적이다.

 정부 입김이 닿는 곳에는 반드시 관피아가 등장한다. 38조원 규모의 정부 물품 구매를 담당하는 조달청에는 조피아(조달청 마피아)가 있다. 이들은 퇴직 후 정부 납품을 중개하는 대형 협동조합·협회의 고위 임원으로 재취업해 정부 물품 공급업자로 변신한다. 중앙일보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간 조달청 퇴직 고위공무원(4급 이상)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재취업자는 퇴직자 91명의 31%인 28명에 달했다. 조피아는 관료 출신이라는 배경을 토대로 정부와 민간의 상거래 길목을 장악한 채 민간기업 위에 군림한다.

 관피아의 힘은 규제에서 나온다. 정부가 인허가와 인증 같은 규제를 만들면 관료들은 퇴직 후 공공기관부터 협회·조합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독점적 로비스트 역할을 한다. 결과는 감독 부실이다. 지난해 전력난 사태의 원인도 원전마피아(한국수력원자력 마피아)의 납품업체 재취업이었다.

이들이 퇴직한 뒤 원전 부품 납품업체와 인증기관 임원으로 취업하면서 시험성적서 조작과 가짜부품 납품 비리가 생겼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도 마찬가지다. 금피아(금융감독원 마피아)가 감사로 간 부실 저축은행과의 유착 속에 금융감독 시스템이 붕괴됐다.

 이같이 연쇄적인 먹이사슬 구조는 경직적인 기수 문화의 영향이 크다. 동기가 국장·차관으로 승진하면 옷을 벗는 대신 산하기관 자리를 차지한다. 퇴직 후엔 거액 연봉이 이들을 맞이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먹이사슬은 철옹성처럼 지켜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공무원 취업에 유리하게 돼 있는 각종 예외 규정을 없애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을 징계하는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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