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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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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묘」자의 기원을 보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태양이 초원에 지는 모습의 태양이다. 사람의 죽음을 장엄한 종막으로 상징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죽은 사람을 초야에서 장사지내는 뜻을 포함한다.
이 두 가지 상징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태양이 떨어지는 듯한 장엄한 죽음이지만, 그 의식은 초야에 묻어 버리는 소박한 절차로 끝나는 것이다.
아직도 몽고나 「네팔」같은 원시에의 향수가 짙은 나라에선 죽은 사람을 그대로 초야에 버려 두는 장례법도 있다. 중국의 남방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날던 새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실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의식이다. 이른바 조장이라는 것이 바로 그 경우다.
요즘 미국의 어느 주에서도 공장이 유행(?)한다는 「토픽」이 있었다. 죽은 사람을 화장해서 그 재를 비행기 위에서 뿌린다. 묘지는커녕 일말의 미련도 없이 모든 것을 오유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같은 어마어마한 무덤도 남겨 놓고 있다. 큰 규모로는 높이가 1백45m, 밑변이 2백29m의 정방형으로 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왕족의 무덤이며 일반적인 예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왕릉이나 왕족의 능은 그 규모나 의식에 있어서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동산의 크기는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다.
이조 시대의 묘계를 보면 품계에 따라 그 규모가 제한되어 있다. 1품은 무덤을 중심으로 사방 1백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50보, 서민은 10보.
왕이라고 어느 경우나 그 무덤이 호화찬란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대왕은 자신이 묻힐, 겨우 3평의 땅을 소망했었다.
시대는 바뀌어 오늘은 시민의 시대이다. 서양의 묘지들을 가보면, 「죽음의 세계」와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조화되어 공원 같기도 하고, 화원 같기도 하다. 정말 그 옆에는 「벤치」가 놓여 있는 것이다. 묘도 기껏해야 돌 한 조각에 십자가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물론 화려한 묘비와 비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죽은 음악가의 묘도 화려하고 장엄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의 예술을 아끼고 기리는 후세의 사람들이 감동의 표시로 세워 놓은 「모뉘망」일 뿐이다.
우리의 세태는 어떤가. 사람들은 묘를 무슨 신분의 상징(스테이터스·심별)인양 왕릉의 경지로 꾸며 놓는다. 허장 성세의 표시이리라. 사자는 마치 그 묘를 위해 죽은 듯이-.
자중을 위한 시대적인 요청은 오히려 사자의 은덕을 아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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