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증권 지분 팔아 2000억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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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지분 일부를 사실상 먼저 매각해 2000억원을 긴급 조달했다. 현대증권 등 3개 금융계열사 매각 절차도 본격 개시돼 자구계획 이행에 속도가 붙게 됐다. 산업은행은 23일 “현대그룹에 긴급 유동성 20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금융계열사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유동성 부족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연말 현대증권·현대저축은행·현대자산운용 등 3개 금융계열사 매각을 핵심으로 하는 총 3조2000억원대의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현대그룹은 당시 신속한 매각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뒤 이 법인을 통해 3개사를 일괄 매각하기로 방침을 정했었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 자금 사정을 감안해 이날 재산신탁방식을 통해 현대상선에 2000억원을 지원했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14.9%를 신탁받은 뒤 이를 근거로 SPC에 수익증권을 발행해 이를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2000억원을 마련해 현대상선에 지급했다. 자산담보대출(ABL) 방식으로 지원됐지만 추후 산업은행이 신탁재산을 매각해 충당하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갚을 필요는 없다. 현대그룹이 사실상 현대증권 지분 일부를 먼저 팔아 현금을 마련한 결과가 된 셈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18일 현대그룹과 3개사 매각을 위한 자문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이날 잠재적 인수 희망자들에게 투자안내서를 배포하는 등 매각작업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2000억원의 현금 유입으로 그룹의 유동성 우려가 불식되고 재무 안정성이 높아지게 됐다”며 “지난해 12월 자구계획 발표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60% 이상의 이행이 가시화되고 있어 곧 시장의 신뢰도는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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