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장에서 (4) 자라나는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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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48년 건국 이래 세월호는 비극성(悲劇性)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고다. 사망자 수로 보면 삼풍백화점(501명)이 최악이다. 배 사고도 1950~70년대 300명 이상 사망한 사례들이 있다. 그럼에도 세월호가 가장 비극적인 건 ‘고등학생들’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이렇게 오랫동안 바다에 잠겨 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충격이다. 2000년 8월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폭발로 바다 밑에 가라앉았다. 장병 118명이 물속에 갇혔다. 그것도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군인과 고등학생은 충격의 감도(感度)가 다르다.

 이런 비극성이 진도를 삼키고 있다. 팽목항에서 가장 처절한 소리는 자식의 시신을 맞이하는 엄마의 통곡이다.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울음이다. 이곳에서 가장 처연한 모습은 어느 엄마다. 바다를 바라보고 하염없이 바위처럼 앉아 있다. 외신기자가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은 세계인에게 세월호의 어처구니없는 비극성을 전할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를 죽이는 기성세대···. 진도 체육관에서 가장 잔인한 물건은 시신 설명서다. 왼쪽 아래 어금니 금니 1개, 오른쪽 턱 선 점, 이마 여드름, 왼쪽 흰색 손목시계, 오른 발목 끈··· 엄마는 알 수 있다, 아니 엄마만 안다.

 한국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미국의 학교 앞 도로에는 시속 25마일(40㎞) 표지가 있다. 위반하면 벌금이 통상의 열 배가 넘는다. 차들은 기어간다. 한국에선 몇 명이나 어린이 보호구역 규정을 지키는가. 학생 30여 명 정도 데리고 뉴욕으로 연극 구경 가는데 미국 선생은 1시간 안전교육을 했다고 한다. 한국엔 이런 학교가 있나.

 그러니 이런 공동체에서는 학생들이 떼로 죽는다. 1999년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서 불이 나 유치원생 19명이 죽었다. 아이들의 숙소는 불이 잘 붙는 소재였다.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붕괴에선 대학 신입생 9명이 죽었다. 리조트는 전형적인 부실 공사였다.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고등학생 5명이 죽었다. ‘구명조끼를 벗어라’라는 교관의 말을 학생들은 착하게 따랐다.

 사고가 나면 사람이 죽는다. 그러나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아이들은 약하고 순진하다. 그래서 공동체가 특별히 배려해야 한다. 같은 배라도 수학여행단이 타면 조금이라도 달라야 한다. 한 번 더 검사하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몰아야 한다. 평상시엔 안 했어도 ‘학생이니까’ 사고 대처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같은 리조트라도 학생들이 오면 한 번 더 챙겨야 한다. 한 번이라도 더 지붕의 눈을 쓸어야 한다. 물론 안전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여성과 어린이는 다르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그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우는 건 그들이 약자이자 공동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전시돼야 한다. 사회의 부실과 무책임을 고발하고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배려를 웅변하는 상징으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 <진도 팽목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