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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의미 바꾼 이라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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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적이 있으면 편이 있다. 내편 네편의 동맹(同盟)관계에 따라 전쟁의 성격이 정해지고 승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21세기의 신 전쟁은 동맹 코드에도 큰 변화를 일으킨다.

냉전과 비교해 보면 한층 더 분명해 진다. 이념의 양극화에 따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둘로 나뉜다. 베를린 장벽이나 한국의 분단선처럼 같은 도시 같은 나라라도 둘로 갈라진다.

그래서 냉전의 동맹 코드는 피보다 짙고 성벽보다 견고한 것으로 등장한다. 피(血)냐 접시(皿)냐의 이설은 있지만 한자의 盟이 피로써 천지신명에 맹세를 한다는 것이고, 동맹을 뜻하는 영어의 얼라이언스(alliance)가 어원적으로 '속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듯이 그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것이 바로 냉전이다.

그러나 신 전쟁에서는 냉전시대의 '동맹'이 '변동연합'(floating coalition)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바뀐다. 테러전에서는 고정된 이론이나 틀이 아니라 변해가는 환경에 따라서 끝없이 '움직이고 진화'해가는 생물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냉전시대의 '공포의 균형'과 같은 고정적.구조적.전략적인 체제는 본질적으로 무정형적인 접근과 전술적인 합종연횡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이 빈 라덴의 체포를 도와달라는 미국 요청에 탈레반과의 과거 역사로 보아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거절했을 때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역사는 오늘 시작했다"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신 전쟁의 시작이 동맹의 코드 변화로 그리고 관계의 재정의로 이뤄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필리핀이 철수시킨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탈레반 공격에 대해 동조한 것이나, 그리고 일부 아랍 이슬람국가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모두가 '변동연합'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반면에 걸프전과 아프간전에서 미국과 어깨동무를 했던 프랑스와 독일이 이번 이라크전에서는 등을 돌리고 원수처럼 반목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미국 의회의 모든 구내식당에서는 프렌치 프라이가 '프리덤 프라이'로, '프렌치 토스트'는 '프리덤 토스트'로, 심지어 미 대통령의 전용기 공군 1호기의 식단에서도 '프렌치 토스트'는 '프리덤 토스트'로 창씨개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10년 전 걸프전 때 미국과 함께 싸웠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영국 혼자만 남은 전쟁터의 빈자리를 보면서 동맹이란 대체 무엇인가하는 세계의 질문이 던져진다.

그러나 정치 외교가 아니라 무기코드로 보면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맹국이란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군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군사용어로 '인터-아퍼러빌리티'(interoperability)라고 한다.

의역하자면 군사 장비.기술이 같거나 융통성이 있어서 양국의 군대가 서로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명령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실질적인 동맹국과 동맹군을 결정하는 잣대가 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명분과 정치적 이해가 같더라도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과의 인터아퍼러빌리티가 없기 때문에 이라크전의 동맹군이나 동맹국이 되기 어렵다.

미군과 연합군을 이뤘던 걸프전과 아프간전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은 실제적인 군사행동을 일으켜 영국군처럼 지상전을 수행하지 않았다. 아니다.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사 평론가들은 직접 전투병을 투입한다 해도 미군과 손발이 맞지 않은 그 군대들은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켰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2백명선의 사상자밖에 내지 않은 걸프전의 신화에 먹칠을 한 것은 인터아퍼러빌리티가 없는 연합군끼리의 오폭이었다.

냉전 후에도 서구 여러 나라들은 산업 문명이 낳은 대량살상무기(WMD)의 무기체계 속에 매달려 있는데 미국만이 정보문명시대의 RMA로 독주하고 있다.

더구나 섬세한 정보 첨단 기술일수록 고도한 인터아퍼러빌리티를 요구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어째서 이라크전에서 미국은 영국군하고만 외로운 전쟁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풀리게 된다.

영국은 미국과 언어만이 아니라 무기의 인터아퍼러빌리티를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비록 정찰위성이나 목표지점을 유도하는 디지털 맵을 만들 수 없다 할지라도 유럽 여러나라에서 장거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영국이다.

방위산업에 있어서도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이 만든 EADS가 아니라 차세대 주력 전투기를 개발하는 미국의 JSF에 참여하고 있다. 인터아퍼러빌리티의 무기 코드로 볼 때 대서양은 도버 해협보다 좁고 가깝다.

반 테러전에 협력하는 나라는 누구라도 동맹이 되는 '변동연합'과 RMA의 군사시스템이 아니면 누구라도 동맹국이 될 수 없는 '인터아퍼러빌리티'의 이 두 가지 다른 동맹코드의 모순-그 속에서 동맹의 난기류를 만드는 미국의 일국주의가 등장한다. 냉전과 달라진 신전쟁의 '동맹'코드야말로 한국과도 깊이 연관돼 있는 대목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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