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자유와 규율의 균형|【마드리드=박중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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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러리스트들이「프랑코」를 납치해 가지고 현금 1천만「페세타」를 24시간 안에 지정된 장소에 갖다 놓으라고 요구했다. 『만일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하고 그들은 끔찍한 공갈을 쳤다.
『「프랑코」를 당장 석방해 너희들에게 돌려보내겠다』고.
「마드리드」시의 서점에서 본「파리」에서 출판된『프랑코」하의「스페인」의「유머」』라는 책 장에서 언뜻 본 우스개 소리다.
「캄비오」16이라는 주간지엔 이런 만화도 실려 있었다. 뚱뚱이 배가 나온 제복 차림의 관리하나가『공원은 시민들이 조용히 쉬는 곳이니「라디오」를 켜지 말아 주시오』하고 큼직한 확성기에 대고 시끄럽게 떠벌리고 있다. 관리란 대개 이 지경이란 얘기다.
이런 책이나 만화가 가게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스페인」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게 분명하다.
얼마 전 새로 생긴 자유주의적인 신문「엘·파이」는 최근 이곳 정부가 민주개혁안의 공개토론을 금지한 것을 놓고 여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개혁이고 무어고 하겠다는거냐고 정부를 호되게 비판한 적이 있다고 한 외국의 영자신문이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곳의 한국의 외교소식통의 얘기로는 선술집에서의 대화 내용이 눈에 띄게「정치화」했다는 것이다.
모두「스페인」이 서구의 딴 나라들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것도 묻어오게 마련인가 보다.
「포르노」라고 할 수 있는「섹스」잡지들도 길가 구석구석 마다 걸려있고「호텔」근처엔 묘한 표정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한번은 그리 고급도 아닌「카페」에서 몇 개 안 되는 생조개 한 접시를 먹고 바가지를 썼다. 우리 공관원들 말로는 좀도둑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 규율이란 문명 된 생활을 위해선 다같이 없을 수 없는 기본적인 조건을 이룬다.
「스페인」에서의 서서한 자유화가「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각가지의 기대를 높여주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의구의 기색도 없지 않은 것은 자유와 규율간의 균형이 깨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가 한창 열 내어 얘기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도 그런 균형이 깨어져서야 되겠느냐는 점에 관한 것들이다.
「자유란 모든 형태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은 뚜렷합니다. 자유란 기강 없는 방종으로부터의 해방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아마 공보 관광성 제공일 이런 경구가 국영「텔리비젼」을 통해서도 가끔씩 흘러나온다는 얘기다.
「스페인」둘레의 나라들에서의 적지 않은 고민이 사회적 규율의 유지나 방위라는데 있다는게 사실이고 보면 이런 기초적인 얘기가 새삼 홍보되고 강조되고 있다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것도 아닌 듯 싶어진다.
『물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도 둑은 무너지기 쉽다. 「마드리드」「바스크」등 여러 지방에서의「데모」·파업사태를 놓고「엘·파이스」지의 사설은 이렇게 쓰고있다.
사실 모든 면에서 자유와 규율을 어떻게 조화 시키느냐도 새 시대를 만든「스페인」사람들의 큰 숙제다. 그러고 보면 중용의 덕을 가르친 공자님 말씀이 맞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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