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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WHO도 인정한 수돗물 아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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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득모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부본부장

외양간에 불이 났다. 그런데도 소가 여물통에만 머리를 박고 있다. 주인이 여물통을 엎어버리자 그때서야 소가 빠져나온다. 불이 붙었는데도 여물통에 집착하는 소를 보면서 우리 마음속에 요지부동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반추해본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서 수돗물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요즘 정수기 없는 집이 어디 있어, 우린 생수 먹어’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수돗물 불신의 한 단면이다. ‘수돗물은 마시기에 부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이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뉴욕의 수도관은 대부분 100년이 넘었다. 관 내부가 녹이 슬었다. 염소 성분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시민의 80%가 수돗물을 마신다. 뉴욕시는 ‘아침에 일어나 처음 수돗물을 1~2분 흘려버린 후 마셔라’라고 홍보한다. 밤새 관내에 고여 있던 물만 버리면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뉴욕 플러싱, 퀸스 지역에선 정수기를 유독 많이 쓴다. 한국 교포가 많이 사는 곳들이다.

 사실 정수기 성능이 좋다고 건강에 좋은 건 아닐 수 있다. 세균으로부터 물의 안전을 지켜주는 염소 성분도, 우리 건강에 필수적인 미네랄까지도 필터가 제거해 증류수 수준의 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터 후단부터 세균과 미생물에 무방비가 된다. 다행히 수돗물은 자연수를 원료로 하다 보니 국내산 생수와 비슷하게 칼슘·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10~30㎎/L 포함돼 있고 세균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수돗물은 24시간 관을 통해 계속 흐른다. 정체가 없다. 서울의 경우 하루 310만t이 매일 생산돼 흐른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게 된다. 그러므로 흐르는 물을 마셔야 된다.

 지난 3월 22일 한 일간지에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물 전문가 10인에게 ‘가장 좋은 먹는 물’을 물었다. 결과는 수돗물이 1위, 약수가 2위, 생수 3위, 정수기물 4위였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정반대다.

 이런데도 서울의 수돗물 ‘아리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정부 불신, 공무원 불신을 들 수 있다. 시민들은 언제부턴가 공무원이 발표하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한다. ‘공무원들이 자기방어, 조직보호를 위해 진실을 축소 은폐한다’고 치부해버린다. 수돗물도 마찬가지다.

 정수기·생수업체 등의 상업광고도 한몫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이들 업체의 광고는 ‘수돗물 깎아내리기’가 주류였다. 그 여파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서울의 수돗물은 정말로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는 것이 수질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163개 수질검사항목을 모두 통과한 물이다. 미국 환경보호청(NSF)과 유엔에서도 품질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환경단체, 시민, 언론인,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수돗물평가위원회’에서 무작위로 수질검사를 할 때마다 ‘적합’ 판정을 받는다. 이제 수돗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을 때가 됐다.

정득모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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