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종자 가족 앞에 선 박근혜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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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오후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해역을 방문했다. 대통령이 사고 현장의 실상을 파악하고 수습 과정을 독려한 건 그 자체로 필요한 일이었다. 더 의미 있었던 건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 600여 명과 30여 분간 대화를 나눈 일이다. 대화의 현장은 분노와 한숨, 눈물과 절규가 뒤섞였다. 박 대통령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여과 없이 전달되는 가족들의 얘기를 차근차근 들었다. 현재 이 땅에서 가장 참담한 상태에 빠져 있는 국민들과 최고 의사결정권자 사이의 질박한 대화는 사건 수습 과정에 일말의 숨통을 틔워줬다.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갈구했던 건 소통이었다. 가족들은 안전행정부의 책임하에 해경·해군·민간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수습 과정을 제대로, 정직하게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다. 피해의식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불신으로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금 어떤 위로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겠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구조 소식을 모두 함께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배로 두 시간 떨어진 사고 현장의 구조 모습을 탑승객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화상 시스템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배석했던 해양경찰청장은 지방청장을 배치해 가족들에게 상시 브리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이 천안함 구조에 참여했던 현장 요원들에게 “최선을 다해달라. 이건 바로 명령이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을 소개할 때 장내에 숙연한 기운이 돌았다. 박 대통령의 대화 방식은 7시간 동안 진행됐던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연상케 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과연 오늘 한 약속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박 대통령이 “여러분과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대통령 주변엔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가족들에게 한 약속은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 약속이 관료주의 타성에 밀려 모처럼 트인 ‘신뢰의 숨통’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