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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미는 잊었다 … 빙판 죽마고우 곽윤기·이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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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쇼트트랙 대표 상비군으로 컴백한 곽윤기(왼쪽)·이정수. 2010년 짬짜미 파문으로 등을 돌렸던 이들은 “멋지게 달려보자”며 의기투합했다. [고양=임현동 기자]

이정수와 곽윤기(이상 25·고양시청). 둘은 2010년 이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을 이끈 선수들이다. 이정수는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1000·1500m 2관왕에 올랐다. 곽윤기도 2012 세계선수권 종합우승을 한 에이스였다.

 소치 겨울올림픽에서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선발전 때 이정수는 장염, 곽윤기는 발목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들이 있었다면 남자 쇼트트랙 노메달의 치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도 “이정수·곽윤기가 올림픽에 나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지난 6일 끝난 2014~2015시즌 쇼트트랙 대표 2차 선발전에서 곽윤기는 종합 6위, 이정수는 8위에 올라 상위 8명에게 주어지는 대표 상비군 자격을 얻었다. 오는 9월 최종 선발전에서 6위 안에 들면 2014~2015시즌 월드컵, 세계선수권 등에 참가할 수 있다. 둘을 16일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 빙상장 앞에서 만났다.

 - 태극마크를 다시 달게 됐다.

 곽윤기=“지난 시즌 선발전에서 탈락해 이번에도 동생들한테 잡히면 어쩌나 했다. 정말 잘 타는 선수가 많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게 하는구나’ 싶었다(웃음). 희망을 가졌다.”

 이정수=“솔직히 나는 ‘8명 안에만 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선발전 방식이 바뀐 게 오히려 좋았다. 큰 부담 갖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

 소치에 가지 못했던 이들은 제3자로서 올림픽을 봤다. 소속팀 동료와 치킨을 먹으면서 응원했다.

 - 소치에서 한국 선수들이 부진했다.

 곽=“링크장에서는 경쟁해도 모두 친한 동료이자 동생이다. 진심으로 메달을 따기 바라며 열심히 응원했다. 떨려서 그랬는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올림픽같지 않았다. 찰스 해믈린(캐나다)같이 잘 타는 선수도 경기 때마다 실수가 생기며 금메달을 1개밖에 못 땄다. 쟁쟁한 선수들이 얼마나 잘 탈지 기대했는데, 김 샜다.”

 - 빅토르 안이 3관왕에 올랐다. 어떻게 봤나.

 곽=“그런 좋은 선수와 경쟁해서 이기는 게 목표였는데, 그걸 못해 마음이 아팠다. 잘하긴 정말 잘하더라.”

 이=“대단했다. 포기하지 않고, 외국 국적을 선택하면서까지 목표의식을 갖고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정수는 올림픽 때 빅토르 안에게만 관심이 쏠린 것에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파벌 때문에 현수형이 러시아로 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동안의 세월은 생각하지 않고 그 부분만 보게 됐다”면서 “지금 선수들끼리는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그런데 지나치게 현수형과 싸운다는 식으로 비쳤고, 어린 선수들이 기가 죽었다. 후배들이 그런 시선을 받는 건 솔직히 싫었다”고 말했다.

 둘은 중학교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서먹했던 때도 있었다. 2010년 3월 짬짜미(승부 담합) 사태가 터진 뒤 둘 간에 폭로전이 펼쳐졌다. 이정수가 코칭스태프 압력으로 세계선수권 개인전에 나서지 못했던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2009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승부를 짜고 경기를 한 의혹이 불거졌다. 곽윤기는 “선발전 때 이정수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왔다”고 주장한 반면, 이정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빙상연맹은 둘에게 선수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2010년 4월에 지인의 주선으로 화해는 했지만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 둘 사이에 큰 아픔이 있었다.

 이=“운동 외에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화해하고 나서도 되게 어색했다. 제일 친했던 친구와 그렇게 되니 ‘어떻게 회복할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다가 동료들과 같이 위닝 일레븐이라는 축구 게임을 했다. 서로 웃고 장난스럽게 게임을 하며 말문이 다시 트였다.”

 곽=“게임이 우리를 다시 살렸다(웃음). 게임을 하면서 정도 다시 생겼고, 우리 관계도 다 풀렸다.”

 곽윤기가 지난 1월 고양시청으로 이적하면서 둘은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이들의 새 목표는 4년 뒤 평창 올림픽이다.

 - 대표팀에서 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예전에는 우리가 막내였다. 이제는 고참이다. 팀 분위기가 좋아야 성적도 좋다. 9월까지 경쟁을 해야 하지만 심각하지 않고 가족같이 운동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

 곽=“대표팀에 가면 모두 예민해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그래도 편하고 신나게 운동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 4년을 함께 더 뛰어야 할 것 같다.

 이=“대표팀에 다시 발탁된 게 시작이라면 평창 올림픽은 끝이다. 시작과 끝을 윤기와 함께할 수 있어 고맙고 기쁘다. 다치지 않고 멋지게 올라가서 평창 올림픽 결승전 스타트에 나란히 서고 싶다.”

 곽=“정말 부상당하면 안 돼. 작년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픈 기억 다 잊고 마지막에는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도록 계속 달려보자.”

고양=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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