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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종교의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인류에게는 늘 희망의 등불이 있었다. 좌절과 인고의 파경을 겪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 밑바닥에서 손을 뻗쳐오는 「하늘」의 구원을 감지해 왔다고나 할까.
「신의 죽음」으로 절벽에 섰는가 싶던 서구의 현대 신학이 새삼 「희망의 신학」을 찾게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구원을 상실한 사람들에겐 언제나 먼 곳에서부터 비쳐오는 별빛이 있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최근 국제 「갤럽」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자료들도 이점을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 60개국을 대상으로 한 종교신앙과 생활양식에 관한 제1차 조사는 아직도 인간이 종전과 별다른 차이 없는 내적 갈망의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산국가를 제외한 인류의 70%가 여전히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50%는 죽음 뒤에도 영생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를 중요시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1960년대의 저조와는 대조적으로 70년대는 전란의 시기였던 40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시사는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에서 48년이래 현저히 나타난 종교의 붕괴현상이라 할까 신앙이 고갈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나라들은 똑같이 산업화된 나라이며 기독교를 주축으로 한 나라이면서도 『가장 종교적인 국민을 가진 미국』과는 판이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4면 기사와 같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국은 『가장 교육 수준이 낮다』고 하는 「아프리카」및 인도에 못지 않은 종교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인들 가운데 94%는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69%가 영생을 믿는다는 조사결과는 그야말로 「영적 재생」의 가능성이 현대에 있어서도 소멸되지 않은 증거라 할 것이다.
이는 곧 도시문화와 산업화가 몰고 온 현대문명의 비인간화 양상에도 불구하고 인류약사의 장내에는 분명히 희망의 징조가 있다는 시사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미국에 있어서도 비록 인구의 61%가 개신자, 27%가 「가톨릭」, 2%가 「유대」교도라 하지만, 교회출석자는 71%에 불과하며, 아울러 신자의 격감과 교회 재정난의 심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멸해 가는 서구기독교문명권을 대표해서 비 종교화 추세를 극복하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그것은 오늘날까지 전세계를 영도해온 기독교적 서구문명의 고뇌와 절망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이에 비해 아시아 아프리카지역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재래신에 대한 높은 종교심을 잃지 않고 있음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한 가닥 낙관의 신호일 수도 있다.
기독교적 전통의 안경을 쓰고 있는 서구인들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또 이 조사조차 『가장 교육이 낮은 지역』이라고 얕보고는 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문화양식과 신앙양식은 오히려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여 절대자에 의지해서 구원을 찾으려했던 인간존재의 근본양식이 어찌 교육의 높고 낮음 때문에 폄하를 받아서 되겠는가.
오히려 이곳이야말로 인류 첫 조상의 출현지요, 고대문명발상지가 아닌가.
특히 오늘의 한국은 기독교 선교면에서 조차 복음의 전시장이 되다시피 돼있을 뿐만 아니라 족생하는 신흥 종교들과 더불어 이를테면 「종교백화점」이 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면에서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 줄기찬 생명력을 지켜온 우리들이야말로 지구가족의 미래를 밝힐 신앙의 역사적 증언자의 역할을 담당할 사명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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