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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가려는데 아이가 잠 안 자 …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대구에서 20대 초반의 아버지가 방치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28개월 된 아이는 아버지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동부경찰서는 15일 “부검 결과 아이가 굶어 죽은 게 아니라는 소견에 따라 재수사를 해 아버지 정모(22)씨로부터 ‘PC방에 가야 하는데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죽였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일주일간 PC방에서 생활하다 지난 7일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간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다. 게임중독인 그는 지난 2월부터 부인(21)과 별거 상태다.

이날 밤 11시쯤 밥을 먹여 아들을 재운 뒤 다시 PC방으로 가려 했으나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았다. 정씨는 손으로 아이의 가슴을 때린 뒤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막아 숨지게 했다. 그는 아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고 찜질방, 여관 등에서 생활했다. 지난달 31일 집으로 돌아와 시신을 담요에 싸서 베란다에 뒀다. 지난 11일 100L 쓰레기 봉투에 시신을 넣은 뒤 가방에 담아 집에서 1.5㎞ 떨어진 곳에 버렸다. 지난 13일에는 경찰에 “노숙을 하던 중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다.

 앞서 아이를 부검한 경북대 이상한(법의학) 교수는 “아이의 위장에서 사망 전에 먹은 50cc 정도의 음식물이 검출됐다”는 소견을 경찰에 냈다.

이 교수는 “이 정도 음식물이면 2살 아이에겐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한 양”이라고 덧붙였다. 외관에서도 굶은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굶으면 수분이 없어 피부가 쪼글쪼글해지고 살이 빠져야 하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을 졸렸다든가, 맞아서 다친 곳도 없었다. 특별한 학대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경찰은 아이 위장에서 발견된 음식물에 독극물이 섞여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정씨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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