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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선거 현수막 내걸고 표 달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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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방선거 출마 예비 후보자들이 사전투표 참여를 구실로 서울 시내에 내건 불법 선거 현수막. [변선구 기자]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

벚꽃·목련·개나리·진달래 등 온갖 꽃이 만개해 출퇴근길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반가운 백화제방(百花齊放) 옆에는 꼴불견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눈을 괴롭히고 있다. 6·4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내건 불법 현수막들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얼핏 명분이 있어 보이지만 불법이다. 안전행정부는 “사전투표 참여를 핑계로 후보자 개인 이름을 알리기 위한 불법 현수막”이라며 “5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안행부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24조)에 따라 시·군·구별로 설치한 합법적 게시대 이외의 가로수·전봇대·가로등·도로분리대 등에 현수막을 설치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58조 1항 5호)에 따라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현수막이라도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내거는 경우를 빼면 모두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런 법 해석에 따라 안행부는 9일 전국 244개 자치단체에 불법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런데도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전국의 도로변은 불법 선거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다. 미관을 심하게 해치는 공해다.

 불법이 버젓이 방치되는 1차 책임은 예비후보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꼭 찍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불법을 저질렀으니 절대로 나를 찍지 말라”고 호소한 꼴이 됐다.

 단속 책임이 있는 기초단체장들의 직무유기도 심각하다. 특히 재선과 3선을 노리는 현직 단체장들은 단속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불법 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안행부도 달랑 공문 한 장 보냈다고 “할 일 다했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현장을 끝까지 챙겨야 한다. “국민이 모르면 없는 정책”이라고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빗댄다면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행정은 면피 행정’일 뿐이다.

 불법을 눈감아주는 유권자의 대응도 문제다. 이제부터라도 시·군·구청에 적극 신고하고 불법을 저지른 예비후보자들에게 항의전화라도 걸자. 예비후보들이 스스로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이라도 나서자. 작은 위법 행위를 예사로 여기는 후보라면 당선된 뒤 큰 불법을 저지르기 쉽다. 이런 후보는 아예 찍지 말자.

 불법 선거 현수막뿐 아니다. 우리 생활 주변엔 아파트분양광고·대리운전홍보물·성매매알선전단 등 불법 광고물이 독버섯처럼 범람하고 있다.

 말로만 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공염불이다. 불법 선거 현수막 철거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가는 작은 실천이 될 수 있다.

장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