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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스텔스 규제’에 또 한번 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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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01면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와 공무원들의 경직된 사고가 또 하나의 규제다.”

정부 제작 한국판 구글 어스 ‘브이월드’는 기업엔 족쇄 … 규제개혁위서 질타

11일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주재로 열린 정부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비공개 회의에서는 2013년 국토교통부가 270억원을 들여 만든 3D 지도 서비스 ‘브이월드(www.vworld.kr)’가 도마에 올랐다.

이날 회의에 나온 김진형 공공데이터 전략위원장은 “정부가 지도정보 서비스를 직접 제공해 국내 관련 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며 브이월드를 비판했다. KAIST 전산학과 교수 출신인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으로 만들어진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의 민간부문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역할은 공공데이터 제공에서 끝나야지,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 민간이 주도해 온 사업영역에서 정부가 민간업체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기본 지리 정보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정부 자원을 개방해 민간 분야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전체 서비스를 제공해 산업을 위축시키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혁을 주장한 정부의 규제 범위에 공무원들의 경직된 사고와 정부의 시장에 대한 몰이해도 포함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 두 가지가 개선되지 않고선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질타한 브이월드는 ‘한국판 구글어스’를 표방하며 국토부가 선보인 3D 지도 서비스다. 국토부는 “비싼 외국기업의 유료서비스 대신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국내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지리정보시스템)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 달리 브이월드는 오히려 국내 GIS 업계에 독(毒)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GIS사업에 필수적인 최신 위성사진, 좌표 등 원(原) 지리정보 데이터를 정부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GIS사업을 하려면 브이월드만 써야 하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된 것이다.

대표적 국내 GIS 기업인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지난해 말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1998년 인터넷 기반의 3D 지도 시스템을 개발했다. ‘구글어스’보다 7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한때 연 200억원 매출에 직원 수만 270명에 달하던 한국공간정보통신은 불과 수년 사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원천기술이 있어도 정부가 지리정보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쓸모없게 된 데다 관 주도의 정보기술(IT) 사업들이 대기업 수주-중소기업 하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을(乙)도 아닌 병(丙)으로 전락했다’는 한탄이 나왔다.

이 회사 김인현(47) 대표는 “국민 세금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정부가 독점해 시장에서 민간기업과 경쟁하겠다는 게 과연 규제개혁이나 ‘정부 3.0’의 취지에 맞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김 대표는 “정부가 데이터 제공 역할을 넘어 직접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시장을 교란했다”고도 했다.

브이월드는 컴퓨터에서 구동할 수 있는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형태로 제공된다. 하지만 브이월드 API에서 원 지리정보 데이터를 추출할 순 없다. 김 대표는 “브이월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거나 자체 개발한 업체들은 3D 지도 서비스를 포기해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가 지리정보 데이터를 제공하는 채널이 따로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 국가공간정보유통시스템(www.nsic.go.kr)을 통해 제한된 지리정보 데이터를 구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데이터를 실제 구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브이월드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브이월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복잡한 플러그인(부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API 형태로 제공되지만 활용이 불편하고 사용하기도 어렵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업데이트하면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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