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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와 「다나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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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에 「지멘스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1914년 「야마모도」내각을 뿌리째 흔들어 끝내는 쓰러뜨리고 만 사건이다. 발단은 비밀서류 한 장. 「지멘스」라면 독일의 유명한 전자기기「메이커」(1897년 설립)다. 그 자회사인 「슈케르트」사가 일본 해군성에 납품과 관련해 뇌물을 주었었다. 이런 사실은 「슈케르트」사의 「카를·리히테르」라는 사람이 동사 동경지사에서 문제의 사실이 기재되어있는 비밀서류를 훔쳐낸 데서 비롯되었다. 「리히테르」는 동경지사장을 협박해 이 서류를 팔아 넘길 속셈이었다.
그런 일들이 「매스컴」을 통해 폭로되자 일본의회에서 야당이 진상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떤 해군중장이 41만「엥」, 소장이 37만「엥」의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그 무렵 공장 직공의 일당은 50전. 40만「엥」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문제를 캐면서 「금강사건」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해군의 장갑순양함 건조를 둘러싸고 「미쓰이」물산으로부터 역시 뇌물을 받은 일이 폭로되었다.
한때 조선총독까지 지냈던 해군대장 「사이또」도 20만「엥」상당의 뇌물을 받았던 사실이 그후 담당검사에 의해 밝혀졌었다. 「야마모도」 내각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2차 대전 후에도 뇌물사건이 일본의 정계를 흔든 일은 적지 않았다. 1948년 이른바 「소화전공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 전후복구에 여념이 없던 일본은 그 무렵 「부흥금융」 을 기간산업체에 저리로 융자해주고 있었다. 소화전공회사는 미인계까지 동원해 무려 25억6천만 「엥」의 융자를 받았었다. 이 금액은 화학공업계 전체에 할당된 융자금액의 3분의1도 넘는 액수였다. 이것이 중의원의 부당재산조위에서 문제가 되었다. 야당은 소화전공회사가 한해동안에 교제비 조로 8천5백만「엥」을 쓴 사실을 밝혀냈다.
정부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니시오」 부총리 겸 관방장관 등 각료 2명, 「후꾸다」 대장성주계국장 등 고급 관리들이 체포되었다. 「아시다」 내각은 마침내 넘어졌다. 그 후 「아시다」전 수상도 구속까지 되었다.
재판의 결과, 소화전공사장 「히노」와 각료 한 명(경제안정본부장관)이 유죄, 전수상과 「후꾸다」 등은 무죄. 「니시오」 부총리는 그 무렵 법정에서 『선거자금을 대기 위해 개인적으로 받은 뇌물이었다』고 증언했었다. 이른바 일본의 「금권정치] 가 어느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록히드」뇌물사건으로 「다나까」 전 수상이 구속된 것은 전후 일본에서 두 번째 있는, 보기 드문 일이다. 사건의 내막도 엄청나지만. 일본 정치구조의 특수한 상황도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어쨌든 우리에겐 『바다 건너의 불』을 보는 호기심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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