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으로 바뀐 황무지 3만평|1년 간 연화하고 돌담 쌓아|대목장 주에 연수 6백 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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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25동란 중 강원도 평창군 평창지구 전투에서 부상한 상이용사 한태섭씨(47·북제주군노좌면행원리)는 근면과 인내로 불구의 몸을 딛고 일어서 이제는 연간6백여 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대목장 주가 됐다.
한씨는 22세 때인 1951년 동부전선 전투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고 오른쪽 손가락3개를 총상으로 잃었다.
그 해6월15일 연금3천환(당시화폐)을 타고 제대한 한씨는 초가3간과 모래밭1천 평이 생활근거의 전부였다.
한씨는 노부모와 동생5명·아내 등 9명의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말 한 마리와 중고마차 1대를 샀다.
부인 김춘화씨(48)는 바다에 나가 잠수로 미역과 해조류를 뜯어 보릿가루와 버무려 끼니를 때웠다.
한씨는 낮엔 마차를 끌고 밤엔 동생들을 이끌고 모래밭에 돌담을 쌓고 흙을 날라 성토를 하며 밭을 일구었다.
행원리에 사는 3백50여 가구는 조상 대대로 여자들이 바다에서 소라·미역 등을 채취해 가난하게 생계를 유지해왔다.
마을사람들은 한씨에게『풀 한 포기 안 나는 모래밭을 갈아서 무엇에 쓰려느냐』며 비웃었으나 한씨는 묵묵히 일을 계속, 모래밭을 개간했다.
한씨는 농사와 마차를 끌어 푼푼이 모은 돈으로 꾸준히 말을 사들여 67년까지 20마리를 샀다. 이때 개량 ,농기구가 나오기 시작, 말 값이 떨어질 것이 예상되자 한씨는 재빨리 2O만원에 말을 몽땅 말았다.
그는 말판 돈과 그동안 모은돈 4O만원으로 행원리에서 한라산 쪽으로 6km떨어진 황무지 3만평과 암소5마리(15만원)를 샀다.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는 축산을 하려는 사람이적어 목장용 땅값은 싼 편이었다.
한씨 가족은 이때부터 황무지에 목장을 만들기위해 돌담을 쌓고 망을 정리했다.
68년 다섯 마리의 소가 새끼5마리를 낳았다. 한씨는 북제주군에 목장개간지원을 요청했으나 불모지에는 초지 개량이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한씨는 사정사정하여 보조 30만원·융자 30만원 등 60만원을 받아 본격적인 개간을 시작했다.
그는 71년「브라만」1마리를 사들여 한우와 교잡, 새끼를 낳았다.
당시 한우는 1마리(1살짜리)에 5만원이었으나 잡종은 체구가 커 10만원에도 날개돋친 듯 팔렸고 연간 15∼2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씨는 이때부터 주위의 목장을 사들이기 시작,50ha(15만평)의 대목장 주가 됐고 소도 60마리로 늘어났다.
마을사람들은 한씨를 따라 너도나도 소를 기르기 시작, 현재 1백80가구가 5백 마리를 기르고있다.
한씨가 개간한 모래밭에 유채와 보리들 재배하자 마을사람들은 뒤따라 모래밭을 개간,30ha(9만평)를 농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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