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기업 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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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 잠정치가 발표되면서 기업들의 ‘실적시즌’이 시작됐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코스피지수가 2000선에 안착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던데요. 실적 발표가 무엇이길래 증권시장이 그처럼 관심을 갖는 걸까요.

A 틴틴 여러분, 학교생활 중 가장 긴장될 때가 언제인가요? 아마 성적표를 받아들 때일 겁니다. 한마디로 실적은 ‘기업의 성적표’입니다. 연간 한 차례 나오는 사업보고서, 분기·반기별로 나오는 보고서가 그것이지요. 분기 보고서는 매 분기가 끝난 뒤 45일 이내에 제출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쏟아지게 되니 ‘실적 시즌’이란 말이 나온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식 보고서를 내기 전에 미리 잠정치를 내놓기도 합니다. 8일 공개된 삼성전자의 실적이 그렇습니다.

연간·분기·반기별로 보고서 발표

 여러분의 성적표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마 부모님일 겁니다. 기업 실적을 가장 주목하는 사람들은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들입니다. 성적표를 보면 그 학생이 한 학기 동안 거둔 성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실적 보고서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얼마만큼의 이익을 거뒀는지, 회사가 가진 재산과 빚이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요.

 핵심은 얼마나 벌었느냐입니다. 영업이익, 순이익이란 말로 표시되지요. 매출에서 인건비, 재료비를 빼고 남긴 돈이 영업이익입니다. 여기서 세금과 이자를 떼고 손에 쥐게 되는 게 순이익이지요.

 주주들이 이익에 관심을 갖는 건 주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입니다. 주식은 기업의 가치를 나누어 놓은 증서입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하는 기업이라면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 1000개를 발행하지요. 이 주식을 사고파는 시장이 주식시장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이 장사를 잘해서 이익이 많이 난다면 어떨까요. 그 기업은 거둔 이익을 주주에게 나눠주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기회를 만들겠지요. 자연히 시장에서는 이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주가는 오릅니다. ‘주가는 이익의 함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물론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무궁무진합니다. 개중에는 그 기업의 가치와는 무관해 보이는 것도 많지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는 물론이고, 때로는 지구 반대편의 조그만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 주가를 요동치게도 합니다. 기업들의 실적은 큰 변화가 없는데 주가가 동반 급등하거나, 무더기로 급락하기도 하지요. 이론상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주식을 팔고 사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때로는 욕망에, 때로는 공포에 휘둘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지요. 그러니 단기적으로 주가의 방향을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죽하면 케인스 같은 경제학자까지 증시를 ‘카지노’에 비유했겠어요.

 하지만 길게 보면 주가는 결국 기업의 가치를 따라간다는 게 중론이에요. 그리고 기업 가치의 핵심은 이익을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주인이 애완견을 이끌며 산책하는 모습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애완견(주가)은 어떤 때는 주인(기업 가치)을 앞서가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목줄을 쥔 주인이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이지요.

 투자자들이 기업의 주식을 살지, 팔지를 결정할 때 이익을 활용한 지표를 들여다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대표적이죠.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한 수치입니다. 기업이 주주가 투자한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예컨대 주주들이 1만원을 투자해 1000원의 이익을 올렸다면 ROE는 10%가 됩니다. 만약 ROE가 1%라면 어떨까요. 주주 입장에선 그 기업에 투자하느니 은행예금에 넣어두고 안전하게 이자를 받는 편이 나을 겁니다.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비싼지(고평가), 아니면 싼지(저평가)를 따질 때도 이익은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주가수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 널리 쓰이지요. 기업의 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누면 1주당 거둔 순이익, 즉 주당순이익(EPS·Earning Per Share)이 계산됩니다. 주가가 이 EPS의 몇 배가 되는지 따지는 게 PER입니다.

 예컨대 A라는 회사가 일 년에 1만원을 번다고 합시다.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 10주라면 EPS는 1000원입니다. A사의 주가가 1만원이라면 PER은 10배가 됩니다. 그런데 비슷한 사업을 하는 B사의 PER이 8배라면 어떨까요. A사의 주가가 B사보다 상대적으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회사 사이에 다른 차이가 없다면 고평가된 A사의 주식을 팔고, 저평가된 B사의 주식을 사는 게 유리하겠지요.

어닝 서프라이즈 vs 어닝 쇼크

 그런데 증시에서 거래되는 실제 주식들의 PER을 살펴보면 좀 이상한 점이 눈에 띌 겁니다. 어떤 회사의 PER은 40배를 넘는 반면 어떤 회사는 6~7배에 머무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주가에 ‘미래 가치’가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은 당장 기업이 거두는 이익만큼이나 앞으로 올릴 이익을 중시합니다. 현재 같은 100만원을 벌더라도 앞으로 1000만원을 벌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과 벌이가 점점 줄어드는 기업을 같이 대우하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또 당장은 적자를 냈더라도 앞으로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가 높으면 그 기업의 PER도 따라 올라갈 겁니다.

 주식시장은 이처럼 기대를 미리 반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PER을 산출할 때도 보통 1년 앞을 내다본 ‘예상 순이익’을 씁니다. 주가도 실적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움직이지요. 실제로 좋은 실적이 나와 그 종목을 살펴보면 주가는 한발 앞서 오른 경우가 많을 겁니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낸 기업의 주가가 오히려 발표 뒤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실적을 예상해 주식을 미리 사둔 투자자들이 실적 발표 뒤 주식을 팔아 차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지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증시 격언이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실적 시즌에 주가가 크게 요동치는 경우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나 크게 못 미치는 ‘어닝 쇼크(earning shock)’가 나올 때입니다. 늘 100점을 받던 학생의 성적이 80점으로 떨어지면 꾸지람을 듣지만, 50점을 받다 80점을 받으면 크게 칭찬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국가별 주가 수준을 보면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 상장사들의 평균 PER이 8.8배 수준인 데 비해 미국은 15.5배, 일본은 12.9배로 훨씬 높습니다. 인도도 14.4배에 달하지요. 우리 기업들이 거두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의미입니다. 북한 리스크, 대외 의존적인 경제 구조 등 많은 원인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년간 저성장을 지속해온 우리 경제와 기업이 투자자에게 ‘꿈과 기대’를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큽니다. 하루빨리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매력적인 기업도 많이 나타나 한국 증시가 저평가의 수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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