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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움 요청 안 했니" … "새엄마랑 살아야 하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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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작한 아동학대 방지 포스터 ‘가려진 진실’. 커튼에 비친 장면(왼쪽)은 엄마가 아이를 쓰다듬는 듯하지만 실제(오른쪽)로는 아이를 때리고 있다. 아동학대의 84%가 가정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웃들이 감시해 신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대구시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A양(12)은 “새엄마와의 1년6개월여간의 생활은 공포 그 자체였다”며 “동생과 함께 (새엄마에게) 많이 맞았고 목을 조를 때 가장 무서웠다”고 말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A양과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 녹취록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A양은 지난해 8월 경북 칠곡에서 새엄마 임모(35)씨의 발길 등에 따른 ‘장파열’로 숨진 B양(8)의 언니다.

 상담은 지난 3월 중순 경북의 한 대학병원에서 약 12분간 진행됐다. 의사가 20여 개의 질문을 하고 A양이 답했다. A양은 상담에서 학대에 따른 아픔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가정이 깨지는 걸 원치 않아 아빠에게는 (학대받은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상담 내용은 검찰이 임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20년을 구형하는 데 증거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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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백을 왜 하게 됐니?(※A양은 처음에 ‘동생을 때렸다’고 하다 지난 2월 상담전문가에게 처음으로 ‘새엄마 강요로 거짓 진술했다’고 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면서) 힘들게 사는 아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자백을 하게 됐어요.”(※양육시설 관계자는 새엄마와 떨어져 살면서 고백할 용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새엄마에게 맞은 것 중 기억나는 게 있니?

 “계단에서 손을 묶고 밀고, 목 조르고, 배를 때리고, 다리를 때리고.”

 -얼마나 자주 그랬니?

 “길면 석 달, 짧으면 한 달. 몇 주 만에 그러기도 했어요.”

 -첨부터 새엄마가 그랬니?

 “동거를 시작하고 2~3개월이 지나 때리기 시작했어요. 거짓말했다고 때리고 거짓말하지 않았는데도 때렸어요.”

 -제일 심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니?

 “목 조르는 것과 벌을 똑바로 안 선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시키는 것. 또 3칸의 계단에 엎드려뻗치기, 무릎 꿇고 손 들기, 의자 들기….”

 -무엇으로 때리니?

 “손과 주먹으로. 한 대만 아니고 발로도 때리고, 넘어지면 발로 밟고….”(※본지가 입수한 숨진 B양의 병원 진료 기록에 따르면 머리와 몸·팔·복부 등 15곳의 상처가 발견됐다.)

 -새엄마가 굶겼니?(의사)

 “이틀 동안 물도 안 줬어요. 왜 그랬는지 몰라요.”

 -도움은 왜 요청하지 않았니?

 “새엄마랑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같이 사는 사람을 믿어야 하잖아요.”

 -법정에서 만약 새엄마를 만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니?

 “괜찮아요. 자기 말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자기만의 정신세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한 A양은 7일 새엄마와 겪은 일을 제보자를 통해 기자에게 전해 왔다. A양은 “난 추위에 강해요. 베란다에 벌거벗겨져 나가 밤을 지내 봤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또 “잠을 재우지 않지만 쭈그려 앉을 수만 있다면 다리가 저려도 좋은 거예요”라고도 했다. 이 제보자에게 A양은 “죽을 만큼 맞아 보지 않았지요? 난 맞아 봤어요”라고도 했다.

 A양은 최근 스트레스로 아토피·축농증 등이 심해져 병원 치료를 받았다. A양은 제보자에게 “새엄마, 아니 그 아줌마. 사형시켜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고 한다.

A양의 가족은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상처받은 아이가 다시는 계모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11일 오전 10시 대구지법에서 열린다.

대구=김윤호·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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