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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공작원의 교묘한 수법에 속았다"|북괴를 다녀온 재미 남창우 교수 일서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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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경=김경철 특파원】미 중앙정보국(CIA)요원임을 사칭했다가 체포된 재미교포「폴·장」의 권유로 북괴를 방문한 재미한국인 두 교수 중의 한사람인 남창우(미국 명「앤드루·남」·56)미「웨스턴·미시건」대 교수는『북괴공작원의 교묘한 수법에 속아 장도영 교수와 함께 북괴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8일 동경에서 가진 회견에서「폴·장」이라는 재미교포 북괴공작원이 미 국가안보회의 의뢰로 두 교수를 북괴를 방문하도록 주선하고 있다고 속이는 바람에 74년 6월30일 미국을 떠나「유럽」을 거쳐 7월16일 평양에 도착, 약 2주간 머무르면서 북괴 고위층과 만났다』면서 사건전모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폴·장」과 접촉한 것은 지난 74년 4월초께 부 터였다. 어느 학회에 나갔을 때「폴·장」이 접근해 왔다.「폴·장」은『당신과 장교수가 미국고위당국 의사로 북괴를 다녀와야겠다. 미국정부를 위해 장교수도 일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해 달라』고 했다.
이 같은「폴·장」의 이야기를 장 교수에게 전달했고「폴·장」과 함께 셋이서 북괴방문을 논의했다. 「폴·장」은 미 안보회의에서 하는 일이어서 미 CIA의「콜비」국장과 안보회의 의장밖에 북괴방문계획을 모르고 있는 것이니 비밀을 지켜 달라는 당부를 했다.
이 때는 북괴최고인민회의에서 3월1일 미국과 북괴사이에 평화우호조약을 맺자는 이야기가 나온 직후라「폴·장」이야기로는 미국에서 회답을 해야 되는데 정부와 관계없는 학자, 교포사회에서 유력한 인물로서 남, 장 두 교수가 선택되었다고 속였다.
그렇다면「키신저」국무장관 등의 북괴방문의뢰서를 달라고 두 교수는「폴·장」에게 요구했는데 그는『극비다. 갔다 와서「워싱턴」에서「브리핑」해야 된다』고 시치미를 뗐다. 북괴 방문 길에 오른 것은 74년 6월30일이었고 미국에 돌아온 것은 8월2일이었다.
나는 미국여권으로, 장 교수는 미국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한국여권으로「파리」까지 갔으나 「파리」에서 장 교수와 갈라져「프라하」∼「모스크바」∼북경∼봉천∼신의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한 것은 7월16일.
장 교수와「파리」에서 헤어진 것은 그가 군 출신으로 신변보장이 없으면 못 가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북괴의 평화통일회부위원장 정준기의 초청장을 받아,「파리」를 떠나서 부 터는 북괴외교관 여권을 사용했는데 장 교수는「폴·장」과 함께「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장 교수와 만나 주로 이호남·김일성-김중린의 연락 책인 듯한 인물, 김중린·이중근(해외동포원호위원장)·한철(노동당원)·김정남 선우영(역사학자)등 모두 12∼13명과 만났다.
이들은 모두 김일성 사상을 강요하려 했으며 비용은 얼마든지 댈 테니 미국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 연방제제의 등에 대한「세미나」를 열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장 교수와 함께 만난 때도 있었고 따로 만나기도 했으며 장 교수와는「호텔」에서 따로 방을 쓰게 되어 있었다. 김중린과 당 본부에서 공식면담을 한바 있는데 북괴고위층은 주로 『평화통일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문제해결로 전쟁방지책을 강구한 다음 병력감소를 해야 할 것』등을 내세웠다.
북괴고위층은 앞으로는 미국정부를 개입시키지 말고 단독으로 협조하자고 상투적인 제의를 해 왔다.
북괴고위층은 누구나『남-북 대화는 안 하겠다. 혁명하는 길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평양에서「폴·장」의 거동이 수상하여 이 때부터 의심이 생겼다.「폴·장」은 북괴고위층과는 상관·부하 같은 태도로 가끔 꾸지람을 듣는 것을 목격했다.
북괴 측은 떠나기 직전에 인삼과 술잔·비단 등을 선물로 주었고 1백「달러」짜리 한 다발(1만「달러」쯤 보였다)을 여비라고 하면서 내놓았다. 우리는 그들의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이이야기를「폴·장」에게 했더니 그도 그런 제의를 거절했다고 하면서「엉뚱한 짓」이라고 알쏭달쏭한 태도를 보였다.
8월2일 미국에 돌아온 나는 미국정부에 내기로 했던 보고서를 쓸 준비를 했다. 그러나 미국정부에 대한 보고회도 마련되지 않고 비용 보상도 없어「콜비」CIA국장한데 75년 1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냈다.
『가지 못할 나라를 갔다 왔다. 미국협조가 없었으면 여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귀국 후 보고서 제출 등 절차가 제대로 안 된다.「폴·장」은 당신들의 직원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
10여일 후「콜비」국장의 답장은『그런 사람도 없고 그런 일을 시킨 일도 없다. FBI가 조사할 문제다』라는 내용의 간단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ClA에 대한 의회의 조사도 있고 해서「콜비」국장이 입장이 곤란해져 모호한 대답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 5월6일 미FBI가 이 사건을 수사, CIA관 명 사칭 죄로「폴·장」을 체포하자 나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미 당국의 비밀유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사전에 주미한국대사관에 연락하지 않았으며 작년 여름처음으로 한국 요로에 이 사실을 알렸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폴·장」이 주한미군의 정보관계 부서에 근무했고 월남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어 나는 그를 미 정보기관의 요원으로 생각했다. 북괴에서는 여행도 했는데 북괴는 평화통일정책의 허위 속에 사상교육을 철저히 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수송관계를 위해서인지 학생들에게도 운전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졌다.
오해도 받고 속은 것이 분하기도 하지만 북괴의 실정을 직접. 눈으로 본 점은 유익하다고 본다.
앞으로「폴·장」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면 내가 증언대에 서게 될 터인데 그 때「폴·장」은 북괴공작원인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하겠다.
「폴·장」이 법정에서 문제될 것은『미국정부에서 임시 고용하는데 필요하다』며 CIA고용양식을 가져와 우리들에게 쓰도록 요청했던 것. 그러나 우리는 여행일 뿐이니 안 쓰겠다고 해 용지를 돌려줬다. CIA고용용지는 원 지가 아니고 사본으로 의심이 생겨서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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