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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언어적 예술로 정착된 현대연극|유덕형씨에 들어본『제3세계연극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연극연출가 유덕형씨가『제3세계 연극제』(4월 20일∼5월2일·「베네셀라」의「카라카스」서)와『「유엔」인구문제협의회의』(5월31일∼6월11일·「캐나다」의「밴쿠버」서)에 연달아 참석하고 귀국했다. 이 두 모임들은 세계연극계의 최신 경향을 정확히 알려줄 뿐 아니라 각 국의 문화외교 각축양상을 보여주어 점점 중시되고 있다. 유씨의 이 회의 참석 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남미에 위치한「카라카스」서 열린 이번 제3회 째의『제3세계 연극제』는 내게 두 가지 중대한 결론을 안겨 줬다. 예술이 얼마나 정치와 밀접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고 현대연극은 이제 비언어적 예술로 정착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45개국에서 2백 여명 연극인이 참석한 이 제전은 회의와 공연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회의에서도, 공연에서도 제3세계 연극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가 암시되었지만 『연극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의견과『시각과 청각을 강조하는 시각연극·동력연극(키네틱·디어터)이 이 시대 연극의 특징』이라는 주장이 확인되어 눈길을 끌었다.
연극이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은 남미의 단체들의 연극에서 확연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반제국주의·반미사상 등을 연극의「토픽」으로 삼았고 회의에서도 투옥된 예술가들의 문제를 자주 거론했으며 회의결론으로 투옥예술가들의 명단을 밝히고 「유엔」에 호소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제3세계 연극제』의 개최 국 결정도 연극이 정치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였다. 1회는 자유진영국가인「마닐라」였던 개최지가 자꾸 중립국가, 그것도 친 사회국가 적 중립국가로 옮아간다.
2회 때는「이란」이었고 이번 3회는「베네쉘라」, 오는 78년에는「우간다」로 결정된 것이다. 이 연극제의 자문국가인 미국, 그리고 중요「업저버」국가인 서독대표들의 충고대로 한국에서의 개최(5, 6회 연극제쯤)는 자유진영의 정치를 위해 이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연극에서 언어가 약화되고 반면 시각·청각이 중시되는 것을 아직 우리 쪽에서는 실험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제전에 참가한 20개 단체 작품을 보면 이제는 시각·청각·연극이 정통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연 작 20편중 가장 절찬을 받은「아이슬란드」국립극단의『이누크(인간)』역시 이 점을 보여줬다. 「에스키모」들의 물개사냥 동작, 동물적인 독특한 소리들을 강조하고 기쁨을 노래한 이 작품은 연극에서 언어가 장벽이 전혀 아님을 보여줬다.
『「유엔」인구문제협의회의』는 당초 우리 동랑국단을 초청했던 대규모 국제회의다. 수상을 비롯한 고위층이 각 국서 참석하고 기자만 3백∼4백 명 이상 참석한 이 회의에 재정상 이유로 참석을 못해 끝내 애석했다. 정부 급 회의와 비 정부 급 회의로 나뉘어 진행된 것이 이 회의의 특징.
인류복지·인구문제 등은 어떤 정책이 따라야 효과적일 것인가가 전자의 회의였던데 비해 후자의 회의는 예술가들이 정책과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에 관한 것. 비 정부 급 회의에서는 매일저녁 영화·연극·음악 등이 상연됐고 건축 전·미술전이 한번에 열렸다.
각 예술분야가 한번에 모두 공연·전시되는 예술의 종합화 경향은 비단 이 회의에서만 보여진 현상은 아닌 듯했다.
미국서는 요즘 건축·조각·무용·음악·연극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조각가 출신이 무용수가 되는 예가 흔하다.
예술가들은 이제 자신의 한 가지 전공에만 좁게 매달리지 않고 다른 여러 분야도 배우고 수용해 창조력과 상상력을 키워 가는 추세인 것이다.
그래서 건축전공의 MIT공대 생들이 신설된 무용과·음악과 강의를 전공 이상으로 열심히 듣는 모습은 흔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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