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재임용 제 시행을 계기로 본 그 실상|가족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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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부 직업에 따라서는 부모의 직업을 계승하는 자손이 적지 않다. 특히 대학교수의 경우 10명중 5, 6명은 자녀가운데 한 명 이상이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셈이라는 얘기다. 여교수의 경우는 반수이상이 교수를 남편으로 선택하고 있다. 부자교수일 때는 부모와 자식이 같은 전공분야를 연구하는 경우도 일부조사지만 30%이상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같은 가족교수는 부부인 경우와 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형제교수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부부교수인 경우 같은 길을 가는 반려로서 서로가 조언자역할을 해주는 것이 강점. 부부교수인 강신항(성대), 정양완(성심여사대)교수의 경우, 강 교수는 국어학이 전공이고 정교수는 국문학이 전공이어서 서로의 협조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 원정수(인하공대), 지순 (연세대)교수도 마찬가지. 원교수가 건축학, 지 교수는 주택 학이 전공으로 상호 보완관계라고 했다.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한규동(테너·숙대), 이관옥(소프라노·서울대)교수부부, 박정윤(피아노·연세대), 이규도(소프라노·이대)교수 부부등이 상부상조하는 부부교수들이다. 이들 부부교수들은 내조와 외조의 조화 속에 한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강신항 교수는 『지금보다 젊었을 때 아내의 연구생활을 돕기 위해 가끔 주부의 역할도 해야 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양완 교수로부터 더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비슷한 학문을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가 벽에 부딪칠 때 조언은 물론 논문작성에 대한 의견이나 교정에 정교수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부인인 정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근 정교수가 한문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역연수원을 나가게 됐을 때 강 교수의 지도와 격려로 옹기를 얻었다고 했다.
부부교수일 때 아내는 다른 주부들처럼 시간에 쫓겨 만족할 만한 주부역할은 못하지만 남편의 하는 일에 직접적인 조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면에서의 보상을 하는 것이라는 「아내교수」들의 말.
부부교수들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나 결합하는데 비해 부자나 형제교수는 부모의 직업을 계승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박물관장을 지냈던 김재원 박사의 맏딸인 김리나 교수(서울대)가 역시 미술사를 전공하고 아버지가 섰던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의술을 2대째 계승한 명주완(전서울대), 명호진(서울대)교수도 마찬가지. 아버지인 명주완 교수가 정신과, 아들인 명호진 교수는 신경과가 전공이다. 차남인 명희진 교수(비뇨기과·조선대)까지 합하면 3부자가 교수이자 의사이다.
같은 이대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는 김은우·김인회 교수도 대표적인 부자 2대에 걸친 가족교수다. 문인으로는 박목월(시인·한양대), 박동규(문학평론·서울대)교수가 부자교수다. 현재 학술원장인 이병도 박사(한국사)의 장남 이춘령 교수(서울대)도 농업사를 전공,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하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전공을 잇는 가장 큰 이유는 전체 가정의 분위기 때문. 김재원 박사의 전공분야를 계승한 김리나 교수는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동기를『아버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 박사가 45년부터 70년까지 경복궁 안의 관사에서 생활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의 미술사에 관계되는 책과 골동품 속에 파묻혀 자연히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특히 부자가 같은 분야의 전공을 택할 경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서적과 자료로 학문연구에 큰 도움을 받는 장점이 있다는 김 교수의 말이다.
이밖에 전공분야가 다른 부자 2대 교수의 경우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학문연구태도에 깊은 영향과 감화를 받는 가정의 분위기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전서울대 총장 권중휘 박사(영문학)가 아버지인 권태준 교수(서울대환경대학원)는 학문적인 집안의 분위기가 항상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휩싸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자교수와는 다르게 형제교수의 경우 전공이 같은 경우가 드물다. 홍사악(약리학·서울대의대), 홍사오(위생화학·성대약대)교수처럼 비슷한 분야를 전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기영(인도철학·동국대), 이부영(정신과·서울대의대)교수, 이기백(한국사·서강대), 이기문(국어학·서울대)교수처럼 상이한 분야를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영·이부영 두 교수는 서로 다른 전공분야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학문상의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가끔 서로 자기학문의 문제점이나 앞으로의 발전방향 등에 대한 얘기를 하면 무척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기백·이기문 교수의 경우 국사와 국어는 외형상으로 달라도 같은 뿌리이기 때문에 형제간의 대화 중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이 같은 가족내의 교수들에 대해 이병도 박사는 『한가지 직업이 정수에 도달하려면 3대를 이어야 한다』는 옛말을 상기시켰다. 학문의 길을 단축시키고 손쉽게 폭을 넓힐 수 있는 가족교수는 많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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