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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취약층 무료 교육, 국립직업훈련원 돌아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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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이어주던 ‘사다리’ 국립직업훈련원(현 폴리텍대학)이 지식 기술자를 키우는 무료 교육기관으로 부활한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1977년 당시 정수직업훈련원 졸업생들을 격려하는 장면. 정수직업훈련원은 1973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워졌다. [중앙포토]

1977년 7월 한국은 제23회 네덜란드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단을 태운 오픈카 행렬이 광화문을 가로질렀다. 당시 선수 중 상당수가 73년 고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국립정수직업훈련원(현 정수폴리텍대학) 출신이었다. 비록 금메달을 못 땄지만 신충찬(57·현대중공업 훈련실무팀장)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신씨는 76년 훈련원을 졸업했다. 그는 “당시 훈련원 입학·졸업식 때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늘 참석했다. 육 여사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박근혜 현 대통령이 참석했다. 정수훈련원 출신이면 누구나 대접받던 시대였다”고 회고했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기획부의 최웅의(52)씨는 81년 훈련원을 졸업하고 85년 일본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씨는 현대중공업에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했고, 지난해 2월엔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최씨는 “정수직업훈련원은 중졸 이상의 학력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고 훈련비도 무료였다. 중산층으로의 꿈을 꿀 수 있는 희망 사다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으로 바뀌어 등록금을 받는다. 이래서는 재능 있는 저소득층을 기술력 있는 중산층으로 키워내지 못한다. 기술입국, 창조경제를 달성하려면 국립직업훈련원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바람이 실현될 전망이다. 정부가 폴리텍대학을 국립평생직업훈련기관으로 전면 개편키로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폴리텍대학은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단순 기술·기능인력을 양성하는 획일적 교육훈련에 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지식근로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특히 저소득층은 고급 기술을 습득하지 못해 질 좋은 일자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우선 단순 집체교육 형식인 교육프로그램을 초·중·고급(엔지니어) 과정으로 개편키로 했다. 훈련 내용도 로봇운영, 자동차 구조, 뮤직비디오 제작, 금융정보 소프트웨어, 바이오 정보기술과 같은 창조경제에 걸맞은 프로그램으로 바꾼다. 기업과 협의해 교육과정은 수시로 업데이트할 방침이다. 산학연계를 통해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기업의 인력난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캠퍼스를 산업단지로 이전하는 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경력단절 여성, 베이비부머, 중졸 또는 고교 중퇴자와 같은 취약계층에는 수준별 훈련 과정을 무료로 개방한다. 특히 이들이 각 단계별 훈련을 수료하면 그에 걸맞은 직장을 알선, 일하면서 고급 지식인력으로 커갈 수 있게 배려한다. 일반계고 취업희망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터줄 계획이다. 저소득층이 많은 50인 이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는 직접 찾아가서 교육하는 현장훈련제도도 도입한다. 독일의 도제식 선취업·후학습 체제를 구현하겠다는 의미다. 교수는 학위와 관계없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채울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대학이란 이름표를 떼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대신 고교를 졸업한 학생은 고용부가 92년 설립한 한국기술교육대에서 전담한다. 말 그대로 국립직업훈련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조만간 박 대통령에게 개혁 방안을 보고한 뒤 이사진과 교수진 개편 등 구체적인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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